CHANGING MY HOME
자발적 외톨이가 되기로 결심하기 무섭게 서울을 떠난 한 여자의 파리 정착기.
장을 봐왔다. 지인에게 추천받은 숙성 콩테 치즈와 양젖으로 만든 토메트 치즈, 곡물이 잔뜩 뿌려진 바이킹 빵, 호박 2개, 복숭아와 천도복숭아 3개씩, 딸기 한 팩, 블랙 올리브 300g과 두툼한 한치살 500g까지. 장 보느라 허기진 탓에 장바구니를 내려놓기 무섭게 빵 한 조각을 잘라 버터를 올린 후 한입 베어 물었다. 입을 오물거리며 아파트 창밖을 살폈다. 정원엔 몇몇 사람들이 담소를 즐기고 있고 신나게 산책 중인 개도 보였다. 내가 머무는 파리 13구, 주상복합아파트 근처에 서는 장터는 서울보단 고향 생각이 나는 곳이다. ‘맛보기’ 과일도 있고 “오세요! 오세요!” 소리치는 호객꾼도 있고 아몬드가 들어간 올리브를 찾는 내게 올리브와 아몬드를 각각 권하는(같이 먹으면 그 맛이 그 맛이라나) 시시껄렁한 청년들도 있으며, 장바구니 물건들을 정리하는 할머니에게 말동무를 해 주는 맘씨 좋은 치즈 가게 아주머니도 있다. 오늘은 두툼하게 썬 오징어 몸통에 몇 가지 양념을 추가해 볶음 요리를 만들었는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역시 남이 해 주는 밥이 맛있어”라는 혼잣말을 하고야 말았다. 동네 장터로 눈을 돌리기 전엔 대형 복합 쇼핑몰과 연결된 아파트 1층의 까르푸에서 거의 매일 장을 봤고 여전히 그곳은 내 방앗간이나 다름없다. 그냥 구경하러 갔다가도 사고, 살 게 있어 들렀다가 추가로 필요한 것을 사고, 제법 필요해 보이지만 실제론 불필요한 것도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나저나 마트나 시장에서 마주치는 파리지앵들의 큰 장바구니를 어깨에 둘러메거나 끌고 다니며 열심히 식재료와 과일을 고르는 모습은 꽤 전투적이다. ‘서울의 이마트나 킴스클럽 풍경이 저랬나’ 떠올려보면 분명히 공기가 다르다. 파리에서 보낸 두 달간 장보기가 내 일과의 중요한 부분이 된 시점, 나도 그들을 닮아가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어느 정도 ‘남 일 말고 내가 먹고사는 문제로 고민하고 싶다’는 언젠가의 바람이 은유가 아닌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엘르>를 그만두기 전, 그러니까 파리로 오기 전 1년간 나는 달리기, 8체질 중 금음 체질식, 필라테스, 심플 라이프와 정리정돈, 두뇌 집중력과 같이 직접 체험한 내용을 에세이로 써내려갔다. 삶의 경계에 선 한 사람이 이국의 도시에서 사는 데 필요한 것은 잘 비워낸 마음과 잘 비축해 놓은 체력이라고 생각했다. 그간의 에세이들은 준비 과정인 셈이었다. 지난여름, 마침내 파리로 떠날 시기가 됐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내 마음속엔 ‘떠나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나에게 집중한 1년간의 준비 시간이 내게 일으킨 변화는 그만큼 놀라웠다. 바로 그때가 떠나야 할 시기였다.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마음으로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을 때, 무작정 외국살이에 대한 로망을 품었을 때 떠날 기회가 오지 않았던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지난 1년간의 행보를 충실하게 이어가고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가끔 뛰고 많이 먹으며 뱃살을 든든하게 불리고 있다. 단순한 삶을 위해 지양해야 할 소비 생활은 이상하리만치 왕성해지고 있으며 내 손으로 치즈와 빵을 산 첫날인 오늘은 금음 체질식의 봉인 해제를 선언한 날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 또한 어떠하리. 나는 인생이 나에게 보낸 여러 제안 중 하나를 선택해 살아왔고 여기선 선택지가 달라진 것 뿐인데. “왜 파리야?”라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을 때, 주로 한 대답은 “그냥 그렇게 정했어”였다. 그렇게 정한 것을 의심하지 않고 이어가면서 그 전까지 수없이 했을 ‘왜’라는 고민은 저 구름 속에 던져버리는 것.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속 시끄러운 기억은 소환하지 않는 것. 그러고 보니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라면 2년 전 겨울, 소란스럽던 이 도시를 외롭게 쏘다니고 있었을 때 만난 사람들과 나눈 온기가 크게 작용했을 거다. 물론 파리지앵, 그러니까 ‘자존감의 지존’들이 모여 사는 이 도시에서 혹여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좀 더 충실히 터득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은 있었다. 아직 그 단서는 찾지 못했지만 멋진 문화유산과 크고 작은 공원을 누빌 수 있는 즐거움이 곳곳에 널려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아서 안 그래도 될 일에 의기소침해진다. 마치 따발총을 쏘는 듯한 그들의 화법은 초급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의 편의 따윈 봐주지 않는다. 이제 겨우 몇 마디씩 들리는 프랑스어는 갈 길이 멀고 임시 거주 중인 아파트에서 매일같이 동참하는 부동산 사이트의 렌털 경쟁은 <슈퍼스타 K>의 본선 진출만큼이나 치열하다. 지인 덕분에 최후의 보루를 마련한 지금은 제법 마음이 여유로워졌지만 메일링된 리스트들을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일상. 그렇다, 일상. 나는 이곳에서 그동안 외면해 왔거나 미뤄둔 일상을 숙제처럼 해 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참 서툰 사람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기분 좋게 인정하게 됐다.
마흔이 되기 전의 일단 멈춤. 파리에서 지내는 안식년 동안 내가 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단 하나, ‘좋은 습관’을 만드는 일이다. 할 엘로드가 쓴 <미라클 모닝>이라는 책은 그 시발점이 됐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람 중에 꼭 미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무의식의 나와 과거의 경험에 관해 이야기한다. 무의식중의 대화는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중요한 행동이다. 이때 확신의 말은 사고와 행동의 제약을 극복하는 힘이 되고 긍정적이고 주도적이며 원하는 가치가 더해진 삶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된다.” 아침 7시에 일어나면 11층 높이에서 보이는 파리의 멋진 하늘과 랜드마크를 1분쯤 마주하다가 책을 펼쳐 읽고는 얼마간 명상을 한다. 나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매일 아침을 시작하고 싶었다. 이곳의 시간은 오로지 나를 위해 마련된 시간이므로. 이로써 미라클 모닝이 가능해졌을까? 아직은 아침이 기다려지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10개월간의 시간이 더해진 1년 후의 아침을 기대한다. 그리곤 문득 이곳 파리는 내 삶의 거대한 유실물 보관소가 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속을 산책하며 내 경험들이 담긴 캐비닛을 찬찬히 꺼내볼 때 소소한 보물들과 마주치면 참 좋겠고 여전히 시뻘겋게 펄떡거리는 상처와 마주하더라도 당황하지 않았으면 한다.
<ELLE Korea> 2016.10에 게재된 컬럼 재편집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