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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윤 Jan 18. 2024

장터에서 꽃핀 해장국

하마터면 술국의 존재를 영영 몰랐을지도 모를 일이다/해장 라이프

 조선 시대 조리서에 해장국에 대한 내용은 없지만, 주막을 소재로 한 풍속화가 많다고 한다. 그림에 큰 가마솥이 걸려있는 그림들이 국밥이나 해장국을 끓이는 솥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신윤복이 그린 <주막도>에 술국을 먹으러 온 한량들의 모습과 해장국을 끓이고 있는 주모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국밥은 한량들의 술국이기도 하고 전국을 다니는 보부상들이 이동시간을 아끼기 위해 간단히 때우는 한 끼 식사 대용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해장국이 술국으로 분리된 시기는 1950년대라 한다. 술국은 쇠뼈를 푹 고아서 된장을 풀어 배추 우거지, 콩나물 등 넣어 끓였다고 한다. 서울의 해장국은 사골 우린 국물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봐도 알 수 있다. 지금의 술국에는 해장국처럼 선지나 양을 넣기도 한다.


 해장국은 된장을 풀어 끓였으니 일종의 토장국이라고 볼 수 있다. 예전 서울의 해장국집들은 해장국에 넣을 된장을 집집을 다니며 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맛이 씁쓸하기도 했지만, 쇠뼈 국물과 우거지, 선지 등과 어우러져 지금과 같은 서울 해장국의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서울식 해장국을 지방에서는 거의 보질 못했다. 아무래도 각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하고 지역적 특색이 반영되어 다양한 형태로 변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술국이라는 표현은 지방에 있는 나에겐 낯선 표현이기도 하다. 실제로 다른 지인들에게 물어봤는데 술국이라는 말을 잘 몰랐다. 전주의 해장국집이나 술집에서 술국이라는 메뉴도 없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은 대체로 술국이라는 말을 잘 알고 있고, 술집이나 해장국집 메뉴에 술국이라는 메뉴가 있다. 해장국에 대해 조사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처음 술국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해장국의 또 다른 애칭이나 별칭쯤 되나 보다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정식 메뉴명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해장국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술국의 존재를 영영 몰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 1(초판 1998., 10쇄 2011. 한복진, 한복려, 황혜성) 책에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냄비를 들고 술국집에 가서 국을 사 와 찬밥을 토렴 해서 먹여 보냈다. 손님들은 대개 단골집을 정해 놓고 다니면서 자기만 먹는 큰 뚝배기를 맡겨 놓고는 베보에 밥을 싸 가지고 와서 자기 뚝배기를 찾아서 밥을 담아 국 마는 사람에게 내밀면 끓는 국으로 토렴 한 뒤에 다시 국을 가득 부어 말아 준다. 술국집이 유명할수록 맡긴 뚝배기 수도 많았으며, 반찬은 여름에는 짠지와 외지, 겨울에는 막김치 정도였다. 술꾼들은 술국을 안주 삼아 해장술을 마시는데 반드시 짝수로 두 잔을 마셨다고 한다.’라고 쓰여있다.     


 예전엔 장터 내에 도수장(屠獸場)이라는 곳에서 갓 잡은 소고기와 돼지고기, 고기의 피를 팔기도 했다. 그 부산물을 이용해 요리를 만들어 파는 식당들이 많았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곳도 있지만 도수장이 사라지면서 요즘은 거의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천안의 아우내장 장날에 돼지 사골 육수에 선지와 우거지를 넣고 끓인 국밥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익산 황등면에도 아직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귀한 소나 돼지를 먹기는 부담스럽지만 소나 돼지의 뼈나 피는 가격도 저렴하고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동물성 영양 공급원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장날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보니 장터의 모습도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그나마 장터 부근에 빠지지 않고 있는 국밥집을 통해 오래전 술국으로부터 이어져 온 해장국을 엿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장터에서 꽃 핀 해장국의 모습이 지속되길 나는 간절히 바란다.     


 그래도 감사한 건 우리 민족은 뼛속 깊이 국물을 사랑하기에 해장국은 영원하리라 믿어본다. 더불어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할 정도로 술과 해장국에 대한 사랑이 넘치니 말이다. 거기에 나도 일조하고 있고 계속 일조할 의사가 있다. 변명 같지만 건강을 해칠 정도가 아닌 즐거울 정도로 마시고도 충분히 해장국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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