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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윤 Apr 03. 2024

프롤로그

 사춘기 때는 문학 소설과 공상 과학에 빠져 공부와 담을 쌓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는 걸 넘어 죽도록 사랑하던 시절이었다. 방학 내내 집안에 틀어박혀 책만 읽다가 오래간만에 외출 현장에서 쓰러지기도 했다. 또 밥 먹을 때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가 책에 떨어진 김칫국물에 폭풍 오열을 해서 엄마에게 미친년 소리까지 들었다. 


 이렇게 책을 읽다 보니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 많던 고교 시절이 아닌가. 그 시절 누구나 짝사랑했던 총각 선생님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기도 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시로 담아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방학을 맞아 놀러 왔던 한 살 차이 나는 사촌 동생이 허술했던 내 글들을 몰래 읽어버렸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누나! 누구 좋아하는구나?”였다. 나만 알고 싶었던 내 마음을 들켜버려서 몹시 속상했다.


 그때 어렴풋이 들었던 생각이 내 글에 내 감정이, 바로 내가 다 보이는구나 싶었다. 그 뒤로 꼭꼭 숨겨두던 일기 외에는 글을 써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내 부끄러운 모습이 다 드러나는 것 같아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함께 공유하고 나도 위로받고 용기를 얻고 싶었다. 잘해왔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어느 하나 필요 없는 경험은 없었던 것 같다. 사춘기 꿈 많던 소녀의 꿈이 지금 이루어지는 걸 보면 말이다. 요리하는 사람으로 평생 내 요리책 한 권과 나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에세이로 써보고 싶었다. 책 쓰기가 뭔지도 모르고 호기롭게 나의 희망 사항을 외치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러워진다. 


 해장국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결정한 후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많은 지인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중 해장국집을 운영했을 당시 명절날 풍경을 전해주었던 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해장국집은 특히 명절날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한다. 명절 당일에는 나 홀로 국밥에 소주를 먹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이중에는 소주 한 잔 마시고 국물 한 입 먹고, 한숨 쉬거나 눈물짓기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명절날까지는 주로 속상해서 오는 손님들이 많았다고 한다. 부부싸움을 하고 오거나 형제간에 싸움을 하고 와서 분위기가 다운되어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럴 때는 음식도 조용히 주고 조용히 비켜주기도 했다고 한다. 


 명절 이후에는 간단하게 외식하려는 가족단위 손님이 많이 왔다고 한다. 가끔 불륜커플이 오기도 했는데 해장국을 너 한입, 나 한입 하는 모습이 가관이었다고 하셨다. 

     

 업종이 달라서일까? 나는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아니면 연륜에서 오는 세심함 관찰력과 배려심이었을까? 무엇이 되었든지 나는 이런 인터뷰 시도를 통해서 지인들의 다른 면모를 볼 수 도 있었고, 서로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실 해장국을 주제로 이야기할 기회가 따로 없지 않은가.


 이렇게 해장국 이야기를 쓰는 동안 지인들에게 나는 또 한 번의 위로와 응원을 받았다. 그러니 나는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이 보답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전진했다.     


 또 글을 쓰면서 다양한 해장국을 먹어보려고 노력했다. 한동안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를 한다며 금주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주량이 줄어들었다. 근래 몇 년은 좀체 과음이라는 걸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전날의 과음으로 아주 오랜만에 속 쓰림이 느껴졌다. 나는 이 속 쓰림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왜냐하면 드디어 해장의 참맛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얼큰한 해장국에 또다시 속이 쓰려 왔지만 마음만은 뿌듯해져 왔다. 스스로 얼마나 해장국에 진심인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맛보지 못한 해장국들이 너무 많다. 그러므로 나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수많은 속 쓰림과 해장을 거치면서 나만의 든든함을 느껴가리라 생각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어떤 행운보다도 더한 행운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다. 이제껏 함께 해주신 모든 분 들과 앞으로도 함께 할 모든 분 들에게 진심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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