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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윤 Jan 17. 2024

콩나물시루에서 시작한 나의 해장국

’왜 나만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라는 거지?/나의 해장 라이프

 짧은 기간이지만 아버지가 만취한 날들이 많았던 시절 우리 집에는 콩나물시루도 많았다. 그때 그 시절에는 가정마다 콩나물시루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유달리 우리 집에는 더 크고 많은 콩나물시루가 있었던 것 같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건 언제나 내 담당이었다. 엄마가 시키는 데로 물을 주긴 했는데 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세상 시름을 알 나이는 아니지만 물을 주고 흘러내리는 물을 보며 멍을 때리는 나만의 시간이 좋았던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왜 나만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라는 거지?‘라는 불만도 있긴 했다. 가끔 콩나물에 씌운 검은 천을 깜박 잊고 안 씌워서 혼나기도 했다. 그럴 때는 ‘왜 나만 시켜서 나만 혼나지?’ 싶은 생각에 서럽기도 했다. 이게 케이 장녀의 서러움일까?     


 지금 생각해 보니 콩나물시루는 아버지의 해장국용이었던 것 같다. 물론 여섯 식구 반찬거리가 되어 주기도 했지만 말이다. 사실 아버지의 해장국용은 콩나물만이 아니었다. 가끔 어머니는 다듬이질하는 방망이로 북어를 인정사정없이 두들겼다. 아버지의 만취에 애꿎은 북어만 매질을 당하던 시절이었다.     


 정말 독하게 끊어내신 술을 마시지 않는 지금도 우리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국은 콩나물국과 북엇국이다. 아직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드신단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콩나물국과 북엇국은 우리 4남매도 좋아하는 최고의 음식 중 하나이다. 사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청춘이었던 시절의 4남매도 술을 어지간히도 마셔댔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단주로 인한 기쁨이 오래가지 못했다. 철없는 4남매의 해장국으로 또 콩나물국과 북엇국을 끓이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해장국은 버전이 다양했다. 같은 콩나물국이라도 때론 맑게. 때론 매콤하고 얼큰하게. 때론 보리새우의 구수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은 해장이 필요할 때면 달려가는 단골 콩나물국밥집이 있다. 가끔은 엄마가 끓여주신 콩나물국이 먹고 싶기도 하지만 이 나이에 해장국을 끓여내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요즘은 콩나물 아이스크림에 콩나물 빵까지 있을 정도로 콩나물국밥집들이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콩나물국밥을 평생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신이 난다.


 비록 요리가 전공이지만 술 마신 다음 날의 콩나물국은 남이 끓여준 게 최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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