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이루고 싶다면 천등을 날려봐

by 김샤갈


그렇다. 이 여행은 도피 휴가, 도피 여행이었다. 회사가 싫었고, 연이은 이직 실패에 지쳐 도망치듯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 내내 내 기분은 기쁨이나 즐거움으로 가볍게 떠오르는 구름보다는, 걱정과 불안, 불만을 꾹꾹 눌러 담은 채 무거운 짐을 끄는 아직은 너무 작은 송아지에 가까웠다.

내가 처한 상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느끼는 기분 탓이었을까. 여행 내내 내 눈에는 소원을 비는 사찰과 절들이 과하리만큼 빈번하게 들어왔다. 사찰이 보이면, 절이 보이면 나는 자연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관광을 가장한 채 내 바람을 빌고 또 빌었다. 급기야는 오직 소원을 빌겠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핑시 여행을 다녀오기에 이르렀다. (제가 이만큼이나 열정적인 사람입니다만)


소원을 들어준다는 천등, 그것만을 생각하며 찾아간 핑시는 생각보다 훨씬 더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이었다.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었고, 맛 좋은 냄새를 풍기는 음식점들 또한 마을 곳곳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핑시 마을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설레어 보였는데, 그들과 함께 같은 길을 걷고 있노라니 그들의 기쁨과 행복이 나에게까지 전이되는 듯했다.


(또 소원 타령이겠냐마는) 소원을 적은 대나무 통이 주렁주렁 매달린 길은 멋스러운 핑시 마을의 그 어떤 풍경보다 더 멋스러워 보였다. 대나무 통의 수만큼이나 많은 누군가의 소원을 바라보며, 나는 대만에서라면 어떤 소원이라도 다 이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여세를 몰아 다른, 무척이나 흥미로워 보이는 관광 따위는 뒤로 제쳐두고 천등을 날릴 수 있는 핑시역 기찻길로 나는 곧장 직진했다. 여자는 직진이지.

천등을 날릴 수 있는 곳에 가까워지자 (실제 핑시역의 거리는 무척 짧다) 커다란 천등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핑시역 주변에 자리한 몇몇 천등 가게 가운데 나는 한 곳을 골랐다. 중국말로 열심히 호객 행위를 하던, “또 만나요.”라는 정확한 한글이 적힌 티셔츠를 입은, 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아줌마네 가게였다.

아이는 여러 색의 천등 가운데 제 눈에 가장 예쁜 천등을 하나 골랐다. 골랐다가 다른 걸로 바꿨고, 바꾼 뒤에는 다시 처음에 골랐던 천등으로 바꿔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소원에 임하는 그 지극히 진지한 자세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등에 소원을 적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누구보다 진지하게. 공주가 되게 해 달라는 소원을 그림으로 그려 달라는 아이의 다소 황당한 요청에도 나는 최선을 다해 응했다. 아이의 소원 역시 내 소원만큼이나 간절하고 진지한 소원일 테니까.


천등 가게에서 알려준 대로 빨간색에는 건강을, 노란색에는 부를, 나머지 두 색에는 그 밖의 소원들을 적었다. 붓에 검은 먹을 묻혀 가며 경건한 마음을 지킨 채로 천등의 사면에 우리의 소원을 구구절절 쓰고, 그렸다. (구체적으로 적을수록 소원이 잘 이루어진다는 말을 막 들었던 터라.)


천등을 날릴 준비를 마쳤다. 천등 가게의 안내에 따라 간절한 마음을 담은 천등과 함께 기찻길로 이동했다. 기찻길 위에 서자 아저씨는 우리에게 천등의 모서리를 잡으라고 한 뒤, 나의 소원에 뜨거운 불을 붙였다.

천등은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이내 아주 커다란 풍선이 되었고, 천등을 잡고 있던 손을 놓자 하늘 위로 높이, 높이, 높이 올라갔다. 나의 간절한 소원을 소중히 품은 채로.

천등이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날아가는 천등을 향해 내 소원을 하나님께 전해 달라고 외쳤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남편과 나, 아이, 우리가 마음을 모아 적었던 그 소원들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다시 한번 기도했다.


천등은 하늘 높이 올라갔고,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천등에서 눈을 뗄 수 있었다.

천등이 내 소원을 위해 하늘 높이 날아간 후, 우리는 여행을 시작했다. 다른 여행자들처럼 핑시역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함께 핑시 여행을 갔던 이들 (대만&일본 부부)의 말에 따르면, 핑시역에는 더 이상 기차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언젠가 철로가 끊어진 뒤 더 이상 수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뭐, 덕분에 나는 고즈넉한 감성의 기찻길 위에서 기차 걱정 없이 사진을 찍고, 천등을 날리고, 소원을 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날 우리가 천등에 적어 하늘로 올려 보냈던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올 날을 기대하고 있다.


천등을 올려 보낸 뒤 우리는 스펀으로 이동했다. 스펀 폭포 근처의 식당에서 현지식을 먹고, 폭포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스펀 폭포로 가는 길은 스펀 폭포만큼이나 흥미로웠다. 흔들거리는 흔들 다리가 있었고, (또??) 소원을 들어준다는 사찰도 있었으며, 우아하게 수영하는 금붕어도 있었다.

천등이 가져다준 소원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터라, 소원을 들어준다는 사찰 앞을 지나치자 내 몸이 먼저 소원을 비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여러분, 습관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스펀 폭포 앞에 서자, 낮게 울리는 물소리가 몸을 감쌌다. 바위 위에서 쏟아져 내린 물은 쉼 없이 부딪히며 하얀 포말을 만들었고, 그 소리는 생각보다 크고 단단했다. 물줄기는 아주 작은 머뭇거림도 없이 아래로 흘렀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하늘로 올려보낸 소원을 떠올렸다.

폭포의 물이 그러하듯, 계속 흐르다 보면, 언젠가는 닿아야 할 곳에 닿게 되는 것들이 있다. 천등에 적어 하늘로 올려 보냈던 우리의 바람 역시, 지금은 이 폭포처럼 어딘가를 향해 묵묵히 흘러가고 있겠지.


자연이 만들어 낸 위대함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타이베이로 돌아가려던 참에, 아이는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고 싶다고 했다. 선뜻 오케이 하지 못하는 나를 보더니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제발. 소원이야. 한 번만. 소원이야, 제발.”

‘제발’과 ‘소원’이라는 아이의 말에 내 간절한 소원이 떠올라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참을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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