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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May 08. 2021

어버이날에 떠올리는 단상들

사...사...사랑합니다!

어버이날에 떠올리는 단상들




1.

 비가 추적추적 오는 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잉크처럼 번지는 불빛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붕을 가볍게 두드리는 빗소리,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와이퍼 소리와 시시콜콜한 농담을 던지는 라디오 속 사람들. 나는 그 잔잔한 노이즈에 마음이 풀려, 빨간불 앞에서 운전대를 잡고 하품을 하고 있던 아빠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 아빠, 좋아하는 걸 취미로 하는 거랑, 일로 하는 거랑은 많이 다른 것 같아. 아무래도 창업이라는 건 단순히 내가 좋아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아.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고, 아빠는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나는 잠깐의 어색함이 무안해서인지, 아니면 아빠에게 특정한 답을 유도하고 싶어서인지 더욱 장황하게 내 고민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창업을 하려면 시간이든, 돈이든 리스크를 걸고 빠르게 실행하고 피드백을 내야 하잖아. 근데 나는 리스크를 걸 용기도, 피드백을 냉철하게 내리는 이성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족한 것 같아. 너무 이 일이 하고 싶은데도 말이야.

그때 나는 50대 50의 저울에서 누군가가 한쪽에 무게추 딱 하나를 달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 누군가는 옆에 있던 아빠였던 거고. 

다시 빨간불. 끝까지 말이 없을 줄 알았던 아빠가 입을 열었다.

- 오락실 게임 속 주인공 같은 거지. 주인공이 죽었다가 보너스 목숨 얻으면 뭐하냐. 목숨 하나 남았을 때 전전긍긍하면서 못했던 것들, 이것저것 마음대로 해보잖아. 너는 보너스 목숨이니깐 너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해봐.

 지금, 그때처럼 똑같이 50대 50의 저울을 들고 있을 때, 나 말고 누군가가 무게추 하나를 달아주길 바랄 때, 선택으로 인한 후회가 두려워 구차한 변명들을 늘어놓을 때, 그때마다 여전히 아빠의 그 '오락실 보너스 목숨'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은 아무래도 아빠가 둘 중 하나에 무게추를 놓는 것이 아닌 그 둘을 들고 있는 '나' 하나를 믿어줬기 때문일 것이다.



2.

# 엄마는 가끔 숨도 못 쉬게 배꼽 빠지듯 웃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나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웃음이 터져 나온다. 왜 웃는 거야 도대체? 뭐 때문인데? 거실로 나와보면 그다지 웃기지도 않은 TV 프로그램 속 몸개그. 나는 어이없으면서도 엄마가 웃으면 또 따라 웃는다. 아니, 왜 나도 웃게 되는 거야. 평소에는 표정 변화가 잘 없는 당신이라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좋았나 보다.


# 요즘 엄마가 갖고 싶은 게 많아지는 것 같다. 아니 사실 예전과 그대로인데 이제 그걸 나한테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갖고 싶은 걸 보면 무슨 명품백, 모피코트(물론 그것도 갖고 싶으시겠지만)가 아닌 알록달록한 작은 신발, 꽃이 그려진 접시, 빨간 머리 앤이 그려진 책갈피 정도. 비싸 봤자 온 가족의 커피를 위한 커피머신을 생일 선물로 달라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내가 가진 돈이 허락하는 한 다 드리는 편이다.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인간 본연의 마음이, 무표정한 엄마가 당당히 표현했을 때 이질적으로 다가왔고, 그 어색함 속에서 볼 수 없었던 엄마의 수줍은 소녀를 만난 듯하여 아들로서의 미안함이 솟구친다. '엄마'가 아닌 김00이라는 사람에게 선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드릴 때 엄마 특유의 무표정에 김이 조금 새긴 하지만. 


 내 진심이 어떻든 간에 전달할 때의 애매한 상황이나 잘못된 표현 하나로 상대방과의 관계가 쉽게 휘청일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그건 쌓여왔던 감정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 겉만 보고 좋은 관계라 착각했던 나의 무지(혹은 이기심)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찌 됐든 간에 귀책사유가 나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볍지 않은 관계라 생각했던 사이가 여지없이 해체될 때 내색하지는 않지만 속으로 절절하게 실망한다. 내가 너를 생각한 만큼 너는 나를 생각하지 않았구나. 그걸 느끼는 순간, 어쩔 수 없음에도 섭섭한 마음에 나의 지난 모든 관계를 망상증 환자처럼 적적하게 훑어본다.


#

 그럴 때마다 단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는 관계는 가족, 그중에서도 엄마. 엄마랑은 세상이 절단날 것처럼 싸워도 그다음 날 아침이면 '커피 내려마실까?' 한 마디에 원상 복구되는 관계. 가끔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빠만 얽혀 들어가 저녁에 같이 화내다가 아침에 혼자 뻘쭘해하시곤 한다. 

 병실 침대 옆 딱딱한 간이침대(침대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의 긴 의자)에 누워 새우잠을 자는 엄마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본 적이 있다. 어쩌면 지금 엄마가 뒷목이 땡긴다고, 허리가 아프다고 한 건 그 간이침대 위 6개월의 시간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 큰 아들 옆에서 뭐 조금 잘못되지 않을까,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쪽잠을 자던 엄마를 보며 앞으로 참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그제서야 하게 됐다. 이런 불효자가 있나.



3.

 엄마가 웃을 때, 함께 웃을 수 있어서 좋다. 내가 힘들 때, 아빠에게 편하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게 좋다. 시간이 흐르면서 언제쯤 내가 그분들의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를 조금씩 고민하게 되지만, 아직도 내게 부모님은 편하게 비빌 수 있는 언덕으로 느껴지며 여전히 그분들 앞에서는 작은 아이가 되곤 한다. 



+

가끔 온 가족이 저녁식사를 하게 되면 아빠가 '너희가 독립하고 직장 얻고 하면 우리 가족 4명이 모두 모여 저녁 식사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아련한 무드를 까시는데, 걱정 마세요, 아버지. 동생은 모르겠는데 제가 보기엔 저는 아직 한참 남았어요. 



@글쓰는 차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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