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겨울이.

그러니 광장을 비워.

by 차구마

금요일 오후 3시 17분처럼 광장에는

겨울이 내려앉아야 해.

손 시려워 오줌 누고 씻기도 무서운

한낮에도 기온은 영하 2도

아침에는 영하 12도까지 내려갔던 그 광장에

슬픈 사람은 비우고 고요와 평화로 채워야 해.


한복 입은 외국인이 길을 물어오면 저쪽이라고 손짓 발짓, 두유라이크김치불고기비빔밥? 묻고 멋쩍게 웃으며 인사해야 해.

사랑의 열매 스티커 사진을 찍던 학생들은 손을 호호 불며 마음처럼 따뜻한 떡볶이와 붕어빵을 나눠 먹어야 하고,

한가한 라운지에서 약속을 기다리던 여자는 별로 마음이 가지 않는 시집 한 권 들춰보다가 책상에 엎드려 잠깐 졸아야 하고,

이순신 동상 앞에서 포즈를 잡던 청년들은 아 씨발 졸라 춥다, 웃으며 삼겹살에 소주 찾아 정겨운 골목을 헤매야 해.


너무 추운 겨울이면 광장은 비어야 해.

형광색 경찰들이 둘씩 짝지어 교대로 어슬렁거리지 않고,

옷을 껴입은 사람들이 무장하듯 각자의 빛을 단단히 쥐고 오들오들 떨지 않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분노로 외치거나 슬픈 마음으로 노래하지 않는, 그럴 필요가 없는,

광장에 비로소 겨울이 평화롭게 내려앉아야 해.


광장에 겨울을 돌려줘. 눈 내리면 발자국에 흩어지지 않고 소복이 쌓일 너른 공간을 돌려줘. 바람이 불면 바람이 흐르는 대로 훑고 지나갈 공중을 돌려줘. 겨울이 가버리기 전에 겨울의 자리를 비워줘야 해. 겨울이 축축히 머물다 떠난 자리에 눈이 녹으면 우리의 일상이 봄처럼 돌아오는 거야.


서울시티투어 버스가 다시 2층까지 사람을 가득 싣고 달리게 되는 날, 슬픈 사람들이 다시 모여 추위에 맞설 필요가 없어지는 날, 우리가 이겼다고 언제든 이길 수 있다고 말해야 하는 거야. 서둘러 그런 날들로 돌아가야 하는 거야.


겨울이 차갑고 마음이 추워. 그러니 광장을 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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