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거룩한 밤

by 차구마

정말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오다니!


이토록 무미건조한 크리스마스이브는 처음이려나. 아무렇지도 않은 하루, 어디서 얻어온 초콜릿 케이크 한 상자가 아니었다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런 하루를 보낸다. 조용한 거리엔 캐럴도 없고, 형형색색 지나친 반짝임도 없고, 마스크로 가린 사람들의 표정도 없다. 고요하고 거룩한 것. 그것이 성탄(聖誕) 본연의 의미와 얼굴이라면, 가끔 이런 한 해도 나쁜 것은 아니라고 위로한다. 성경에 따르면 성탄절은 어쨌든 모두의 구원을 위해 희생할 한 사람이 탄생했던 날, 그래서 인류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지만 그 한 사람에게는 막연한 슬픔이었던 날이었으니까. (태어나고 보니 내가 예수라니!)


비극적이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분명히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속죄함 얻음'을 요란하게 기뻐하기를 잠시 멈추고 우리 대신 희생하려 태어난 한 운명을 조용히 애도하는 것도 때로는 우리가 지어야 할 표정이겠다. 희생한 자와 희생된 자, 그들의 숙연한 운명과 광막한 슬픔은 언제나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준의 것들이 아닐 만큼 아득하겠지만, 그래도 그 슬픔을 슬퍼하기 위해 애쓰는 일은 넉넉한 우리 수준의 일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인간은 타인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


그러니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마스크 뒤에 들뜬 표정을 숨기고 남들과 철저히 거리를 지켜야만 하고, 그래서 내 표정이 남에게 들킬 일 없게 된 김에, 우리는 오늘 마음 놓고 슬퍼해보자. 무언가를 위해 희생한, 혹은 희생하게 될 이들의 깊은 슬픔을. 호국이며 독립이며 민주화를 위해, 혹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해 지금껏 너무 많은 이들이 희생했을뿐더러, 오늘날의 '고요하고 거룩한 밤'들에도 앞으로 지을 우리의 죄를 짊어질 수많은 '아기 예수'는 태어나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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