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다정함과 이해가 있어 다행이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는 안 좋은 기운에 압도되는 것 같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 그중에서도 환자들. 눈에 띄게 아픈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 절반이상인 그곳에서, 하하 호호 웃는 마음으로 일을 보기란 쉽지 않다. 바늘이 들어갈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작은 아이가 항암치료를 받고 있기도 하고,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소녀 같은 젊은 여자가 항암으로 빠진 머리를 반지르르 드러내고 내 곁을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수시로 들려오는 지나갈게요라는 소리에 돌아보면 의식이 없는 환자들이 누운 모습을 그를 지키는 가족과 의료진을 보아야 한다. 모두들 아파서, 지쳐서, 힘들어서 아프지 않은 사람들도 반쯤 넋을 놓고 있거나, 힘이 빠진 모습들이다. 그걸 보기만 해도 같이 힘이 빠진다.
하지만 생각보다 병원에서는 좋은 기운을 받기도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인류애가 충전되기도 한다. 이상하게 모두가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고 애쓰고, 기다려준다. 넓은 엘리베이터 속 버튼을 누를 수 없을 때마다, 7층 좀 눌러주세요. 10층 좀 눌러주세요 소리들이 들려오고. 모두가 발 벗고 버튼을 누른다. 7층 눌렀습니다. 이건 10층 안 가요. 얼른 내리셔서 앞쪽 꺼 저거 타세요. 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 맞나 할 정도로 다정하다. 측은한 눈빛으로 저 사람은 어떻게 왔을까를 생각한다. 아래위로 훑어내리는 기분 나쁜 시선이 아니다. 그저 우찌 여기까지 왔을꼬라는 내 가족에게 드는 걱정스러운 그 마음이다.
병실에서도, 한 병실을 쓴다는 이유로 내적 친밀감이 생기기도 한다. 생활습관이 좋지 못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들도 종종 있지만, 그래서 지옥 같은 며칠을 보내야 하는 때도 있지만, 대체로 다들 함께 쓰는 공간에서 서로를 조심한다. 누군가 코를 골고 자더라도, 아픈 사람이기에 이해한다. 누군가 아픔에 소리를 질러도 아픈 사람이기에 넘어간다. 누군가 전화를 크게 받아도 귀가 잘 안 들리는 어르신이기에 이해한다. 내 가족도, 우리 아빠도 그리 이해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들만 있는 공간에서 소소하게 피어나는 다정함과 이해가 있다. 그 조그만 숨구멍으로 잠깐의 숨통을 돌린다. 이렇게 다행인 것들을 생각하면 조금 낫다. 훨씬 낫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