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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희연 작가 Jun 22. 2019

기대라는 이름의 폭력

차희연박사의 심리

“대표님, 대표님 별명이 뭔지 아세요?”
어느 회사나 상큼하게 할말 다하는 신입사원이 있지 않은가.
바로 상큼하게 웃으며 할말 다하는 신입사원이 나에게 말했다.
“내 별명이 뭔데?”
“대표님 별명은 차 트라우마예요.”
“차 트라우마? 그게 뭔데?”
“대표님 앞에만 서면 트라우마가 생겨요.”

사실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직원들에 대한 애정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채용했던 직원들은 태도가 참 좋았다.
지식이나 기술은 가르치면 되지만 태도는 가르친다고 되는게 아니지 않는가.
그 당시 채용했던 직원들은 지식과 기술이 부족해도
열심히 하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태도가 괜찮은 직원들을 채용했었다.
대신에 부족한 지식과 기술은 내가 직접 트레이닝을 시켰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트레이닝을 했었는데,
직원들에게 주제를 주고 시범강의를 하게 하여 피드백을 했었다.
문제는 태도가 좋다고 해서 부족한 지식과 기술을 상쇄하지 못한다는 점을 그때는 미처 인지하지 못한 채 기대만 높았었다.

기대치가 높은 만큼 실망이 컸기 때문에 그 실망감만큼 직원들에게 독설을 했다.
“얼마나 준비를 했니?”
“어제 몇시간 못자고 준비했어요?”
“준비 열심히 했다면서 이것밖에 안 되는거니?”

나름대로 부드럽게 말을 했지만 내용은 독설이었다.
분노를 숨긴다고 숨긴 독설이다.
숨긴다고 숨겨지겠는가.
독설이 이미 기대에 못미친 직원들에 대한 분노였는데 말이다.
바로 이 독설에 트레이닝을 거듭할수록 직원들은 자신감도 떨어지고 스트레스는 점점 심해져 갔다.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면 성과도 떨어지고 매출도 떨어지게 되어 있다.

자녀에게 기대가 높은 부모도 비슷한 일을 겪는다.
"우리 아들은 공부를 잘하니까 서울대 의대 가야지?"
아직 중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아이에게 과도하게 기대를 건다.
아이는 서울대고 연고대고 아무 생각도 없는데 아이는 이미 한국을 이끌어갈 인재인줄 안다
"너한테 들어가는 돈이 얼만데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지, 엄마아빠는 너 하나 보고 사는데!"
아이한테 괜히 화가 나서 퍼붓는다.

연인사이에도 기대치는 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집에 들어가면서 전화 하지. 기다렸쟎아"
"틈날때마다 당연히 연락해야하는거 아냐?"
여자들이 가장 바라는 사람이 자상한 사람이다.
떡줄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여자는 자기 혼자 정해놓은 연인간의 관계에 대한 기대에 맞게 남자를 달달 볶는다.
남자도 여자한테 마찬가지이다.
"일찍 좀 다녀. 밤늦게 다니면 위험하쟎아"
"옷이 왜이렇게 야해. 남들이 보쟎아"
정숙하고 조신한 여성에 대한 환상을 여자친구에게 주입한다.
지금 옆에 있는 여자친구는 남자의 환상을 채워줄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는데 말이다.

상대방이 원치 않는 기대치는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혼자 기대하고 김칫국을 마셔댄 자신의 문제이다.
나 역시 김칫국 한사발 마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많은 것을 마음에서 포기했다.
<포기하면 편해>
어차피 내가 하라는대로 따라오지 않는다.
자식도 내맘대로 되지 않는데 남들은 당연히 내맘대로 안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애정하고 혼자 높게 평가하고 기대해 마지 않았던 그 직원들이 모두 퇴사를 하고 난 이후부터는 남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그 이후에 입사한 막내 꼬맹이 직원이 26살 이었는데 내 눈에는 그리 애기로 보일수 없었다.
대단한 기대도 하지 않았고 너무 힘을 주고 아이를 대하지도 않았다.
그냥 자기가 맡은 일만 잘 해도 기특했다.
그 친구에 대한 기대를 빼니까 실망할 것도 없었다.
시키는 일만 잘해도 그냥 예쁘다고 했다.
"이거 하느라 얼마나 걸렸니?"
부하직원의 역량을 체크하는 단골 질문을 했다.
"사실 이틀 내내 8시까지 야근하면서 완성했어요."
물론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한 모습에 기특했다.
"고생했네. 잘했어. 이 부분만 수정하면 괜찮겠다."
혼날 준비를 한듯했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보았다.

상대방은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나혼자 기대를 하며 닥달한 것은 <기대라는 이름의 폭력>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할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며 살고있다.
그게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실망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글 차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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