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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희연 작가 Jun 24. 2019

부정적 감정이 나쁜게 아니라 나쁜 표현이 나쁜거다.

유투브 차희연 박사의 심리 TV

미국에서 눈앞에서 차가 사고가 나서 불에 타고 있는 영상을  촬영해서 SNS에 올렸다.
차 사고를 가장 먼저 발견했는데도 구조보다는 영상을 촬영한 것이다.
집과 충돌한 차는 반파가 되었고 17살의 청소년 2명이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결국 한명은 숨졌다.
소방대원들과 주민들이 차에 난 불을 끄고 다친 학생들을 병원으로 옮기기까지 모두 동영상으로 촬영을 하고 페이스북에 영상을 올렸다.

그냥 상상만해도 열받지 않는가.
만약 처음 차사고를 목격했을 때 신고를 하고 구조를 했다면 어쩌면 학생이 숨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감정을 느끼는 동물이다.
상황을 인식하는 순간 좋던 나쁘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상황에 대한 본능적인 판단을 했다는 증거이다.
기분이 나빴다면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것은 당연하다.
심리학자 제이존크는 인간이 경험하고 자각하는 것은 반드시 감정을 동반한다고 했다.
모든 상황에서 감정을 느낀다는 말이다.
특히 비윤리적인 상황을 보게 되었을때 인간은 분노를 느끼게 되어 있다.
우리가 차사고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리는 규칙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다.
사고를 당한 사람을 도와줘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사회적 약자를 도와줘야 한다는 것과같이
사회적규칙도 윤리이다.

2007년 Codice Galley에서 죽은 개를 전시하는 예술가가 있었다.
코스타리카 예술가인 기예르모 베르가스(Guillermo Vargas)는 병든 유기견을 데려다가 전시회장 한 구석에 묶어놨다.
개가 닿을 수 있을듯 닿을 수 없는 곳에 개를 묶어놓고 죽을 때까지 물과 먹이를 주지 않았다.
결국 전시회장의 유기견은 다음날 죽었다.
베르가르는 이 유기견을 ‘굶어 죽은 개’로 명명했다.
그리고 2008년에 비엔날레에서 또 전시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은 이 전시를 반대했지만,
베르가르는 ‘굶어 죽은 개’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한 예술의 준비단계일 뿐이라고 선언했다.

베르가르의 자택에도 반대하는 시위대가 찾아오는 등 사회적인 문제가 되자 이렇게 말했다.
“다음 전시회부터는 보건소에서 도살당할 개를 사용하겠다. 돕고 싶은 사람은 자유롭게 데려가도 좋다.”

예고한 대로 미술관에는 ‘굶어 죽은 개’가 전시되었고
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리고 ‘개’ 앞에 세워진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돕고 싶은 사람은 자유롭게 데려가세요”

팻말을 본 관람객들은 너도나도 개를 데려갔고
도살당할 개 10마리를 모두 나누어주고 전시회를 마쳤다.
이후에 같은 전시회를 개최했으나 관람객들이 모두 데려가는 바람에 ‘굶어 죽은 개’는 완성되지 않았다.

전시회가 유명해지자 베르가르는 이 말을 남기고 전시회를 그만뒀다
 “이제부터 일어날 사건을 기대하라”

곧 이 사건이 잊혀졌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전국 각지의 공원에 야위고 쇠약해진 개들이 나타났다.
개들 앞에는 팻말이 세워졌다.
“돕고 싶은 사람은 자유롭게 데려가세요.”

전시회 당시 분위기에 타서 착한 척 했던 사람들이
개를 기르는 데에 싫증이 나자
베르가르의 방법을 그대로 따서 공원에 내놓은 것이다.
결국, 전시회에 완성되지 않았던 ‘굶어 죽은 개’는
수개월 후에 개를 데려간 관람객들로 인해서 완성된 것이다.

버릴꺼면 키우지를 말던가.
착한척 해서 데려가놓고 책임지지 못하고 생명을 버리는 인간들은 한국에도 너무나 많다.
사실 뉴스만 봐도 열받는 일 투성이다.
비윤리적인 상황을 목격하고 화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것을 “도덕적 분노(Moral anger)”라고 말한다.
도덕적 분노는 약자를 보호하거나 공정한 상황을 만들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더 나은 근무 환경을 만들기도 하고 공정한 문화를 만드는것과 같이 사회적인 순기능이 있다.

분노라는 감정은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순기능이 있다.
사회적으로 불공정하거나 부당한 일을 목격하면 우리는 열받아서 바로잡으려고 한다.
요즘 유행처럼 청와대 게시판에 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목격한것 보다 더 강도가 센게 있다.
자신이 직접 불공정한 일을 겪으면 목격한것보다 몇배는 더 열받는다.
열받아야 파이팅 넘치게 싸우기 때문에 순기능을 갖는다.

다만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것은 다르다.
화가 났을 때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 정상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화가 났기 때문에 소리를 지른다거나 벽을 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방식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나쁜게 아니다.
나쁜 방식으로 표현하는게 나쁜거다.

글 차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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