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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짜이 Feb 09. 2023

글을 쓰세요

나에게는 글을 쓰라고 하는 사람이 세 명 있.


첫 번째 우리 엄마.

이제는 포기하실 법도 한데 엄마는 진심으로 가 글을 써서 작가가 되길 바란다.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딸아, 너도 저런 거를 좀 써라." 라고 한다. 그럼 나는 한숨을 쉬며 "엄마, 그 드라마 작가가 되려면 말이지..." 라고 긴 설명하려다가 만다. 귀찮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곱 살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던 딸이었 커가면서 잘하는 것이라곤 책 읽는 거 하나뿐이었기에 잠시나마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다녔을 때 엄마는 너무 좋아했다. 심지어 아직도 내 주변에 작가 직업을 가진 친구가 있는 것 좋아한다. 언젠가 호스피스 봉사를 하던 엄마가 교육 중 숙제였던 유서를 쓴 것을 보았는데 나에게 남긴 말은 오직 하나였다.

'네 꿈을 펼치고 살아라.'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흔한 말이지만 이제는 안다. 자식이 꿈을 펼치고 사는 것만큼 부모에게 기쁨은 없다는 것을.


두 번째로 글을 쓰라 하는 사람은 오랜 내 친구. 30년쯤 보아왔고 이 친구 덕에 남편을 만나기도 했다. 이제는 일 년에 한두 번쯤 만나고 주로 전화나 카톡으로 서로의 일상을 나눈다. 친구는 대화가 마무리될 무렵이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한다. 

짜이야, 너는 글을 써. 저작권 부자 모르냐. 4차 산업혁명 시대엔 그런 걸 해야 되는 거야.

맥락 없 훅 들어오는 공격에  대꾸해 준다.

그래?  유튜브. 그거 하면 돈 많이 번드라.

거대한 농담처럼 주고받는 말들이지만 사실 그  어느 정도 진심으로 하는 말이란 걸 안다. 20대 때 소설을 쓰면 친구들끼리 가입한 오프라인 카페에 파일을 올리곤 했다. 애들은 남사스럽다, 불경하다, 무섭다, 이해가 안 간다, 웃기고 있다 등등의 평을 하면서 열심히 읽어주었다. 술을 마시면 시를 암송하는 주책바가지 주정을 부려도 친구들은 들어주었다. 변덕스럽고, 나서기 좋아하고, 잘 삐치고, 감정이 널는 것을 로 다 지켜봐 주고 이해해 줬다. 


마지막으로 글쓰기를 독려하시는 분은 왕성한 민운동가이자 작가이자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사모님이자 세 아이의 엄마이신 분. 이분은 짧은 글 시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아주 아름답게 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지성과 교양, 위트에 저로 아아,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인격을 갖출 순 없겠구나 싶어진다. 대외적으로 수많은 일들을 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세속적인 부나 명예 얻는 일이라기보다 평화, 공정, 인류애를 지키는 일에 가까운 일이. 이 은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글을 쓰는지 는데도 불구하고,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된 시점부터 지까지 결같이 글을 쓰라 다. 좋은 책이 있으면 소개해주고 심지어 생각이 나더라며 책선물도 해주신다. 언젠가 당신이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도 들려주셨는데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무작정 투고를 하면서 시작한 거죠." 하시길래 순진하게도 '독자투고를 하신 건가, 그런 거라면 나도 몇 번 알바로 했었는데' 라며 동질감을 느껴보려던 차, 알고 보니  잡지는 대안문화를 실천하기로 유명한, 어지간한 신변잡기식 수필로는 명함도 못 내미는 것이었다는.


이밖에도 졸업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과모임에 가면 글 쓰라는 소리를 지겹도록 듣기도 하고, 하기도 하고 아무튼 서로에게 남발하는데 그건 거의 문창과 유행어에 가깝기 때문에 생략.


어쨌든 이렇게 잊을만하면 글을 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복잡 미묘한 마음상태가 되는데...


중학교 입학했던 첫날. 선생님이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었다. 그때는 그랬다. 한 명씩 앞으로 나가서 이름, 가족관계, 취미, 장래희망 따위를 말하는 것이 자기소개 시간. 나는 당당하게 앞으로 나가서 다짜고짜 "제 장래희망은 한국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작가입니다." 라고 했다. 또래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는 자만과 글짓기 대회마다 상을 받았다는 오만을 굳이 티 내고 싶던 부끄러움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런 날 보고 빙그시 웃던 담임선생님은 말했다.

"나도 문학청년이어서 대학 때 신춘문예에도 도전했었는데 이랑은 통할 것 . 반가워."

그 말을 듣는 순 맘은 즘말로 짜게 식었다고 해야하나. 담임선생님은 내가 보기에 너무나 평범한 아저씨였던 거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사람은 멀리서도 광채가 나고 세상을 뒤엎을 매력을 가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문학청년이란 사람이 고작 중학교 도덕선생님이 되었다는 것이 실망스러웠다.(속세에 찌든 지금은 제일 잘 된 케이스라 생각하는데) 그리고 그 후로는 어디 가서 작가가 꿈이라고 당당하게 입밖에 내지 못했던 것 같다... 라고 쓰지만 나는 아마 늘 티를 냈을 것이다. 유난을 떨었을 것이다. 마흔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안 그러려고 노력은 하는데도 숨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아이 친구 엄마로 만나 나에 대해 전혀 정보가 거의 없는 지인도 그런 말을 한다. 00 엄마는 글 쓰는 거 해보라고. 재밌는 사람인 거 같은데 그런 거 하면 좋겠다고. 요즘은 웹소설이 인기라고 친절하게 알려도 한다. 나는 일단 나를 재미있어한다는 것에 조금 놀라면서 (나이가 들수록 왜 이리 푼수가 되는 것인가) 웹소설이 인기인 것은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도 웹툰과 웹소설의 광팬이니까. 하지만 나에겐 그럴 능력이 없다. 고 말하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고 그저 호호호 웃어버렸다.


이제는 가공한 일기 정도를 끄적이는 것이 부인데, 나랑 가장 가까운 친구인 남편은 내가 쓴 글을 일전에 한 장 읽더니 그러더라.


이거 장르가 sf공상과학소설이야?


사실 거기 붙여둔 글들은 다른 친구들이 읽고는 야, 너 이거 남편이 봐도 되는 거냐 걱정할 정도로 실사로 받아들인 거였는데 정작 남편은 황당할 정도로 허구라 한 걸 보면 역시 보는 눈이 있긴 해.


잘 아는 사람은 거짓으로 읽고, 잘 모르는 사람은 사실로 읽는 그런 장르는 무엇이라 해야 하나? 브런치? ㅎㅎ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쓰라고 해주는 사람 중 내 브런치를 아는 사람은 없으니 그것 또한 재미다. 요즘에 드는 생각은 언행일치도 그렇지만 언문일치도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말과 행동도 다르고 말과 글도 다른데다가 인격과 글은 정말 다른데 이런 인간도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슬프다. 역량은 물론이고 자질도 없네. 렇지만 누구도 나를 모르고, 돈이 될 일도 없고, 대단한 문학성을 논할 필요도 없는 글쓰기만큼 재미있는 것이 또 있을까. 그래서 오늘도 써봤다. 덧붙이자면 내가 졸업한 문창과가 폐지된다는 소식을 들은 날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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