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카페를 벗어난 새로운 방식
나, 너무 힘들어.
“뭐가?”
“외부에서 제안받은 일을 해보겠다고 의견을 전달하는데, 그에 대한 답변을 듣는데 마음이 불편해지더라고. 그 의미가 “생각없이 그렇게 일을 맡냐.”는 것 같았거든. 그래, 안 하는 건 좋은데, 표현이 마음에 걸려. 내가 그렇게 생각 없나? 나 지금 힘이 없어.”
“경력이 많은 사람이 의견을 전하는 건 그럴 수 있겠지만, 표현이 선을 넘었네. 힘들었겠다. 그런데 왜 지금 전화했어. 나한테 들렀다 가면 만나서 뭐라도 사주지.”
“아니야. 그냥 따릉이 타고 기차역까지 오다보니 마음이 많이 가라앉아서 괜찮아.”
“그래도 시간 내서 와.”
“알겠어. (갑자기 힘이 나서) 그럼 다음 주에 갈까? 따릉이 타고 한강에서 만나는 거야.”
“오, 괜찮다!”
“우리도 한강 컵라면 먹고!”
“오오.”
가지 않아도 아는 공간
한강에서 끓여먹는 컵라면이 왜 한강 스넥의 상징처럼 됐을까? 미디어에서 유경험자들의 이야기가 전파를 타고 종종 등장했고, 실제로도 제법 맛있기 때문이겠지. 우리는 한강 라면 때문만은 아니고 따릉이를 타고 갈 수 있는 최적의 공간으로, 한강으로 정했다.
따릉이 앱이 잘 되어 있어 어느 지역을 기점으로 근처 대여소 정보며, 몇 대가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요즘은 디지털 지도가 잘 발달되어 지리정보 검색이 정말 유용하다. 가는 길의 실사뷰도 볼 수 있어서 도로쪽에 있는 자전거 도로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근처 맛집과 사람들 반응의 누적까지.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지리정보는 점점 쌓여가고 있고, 쌓이다 못해 흘러넘치는 거 아닌가 싶다. 지리공간을 경험한 리뷰 이야기까지 정보라할 수 있으니, 작은 공간에 축적된 이야기는 죄다 다 읽기 힘들다.
친구와 나는 지리정보 검색으로 계획을 세웠다. 대여하기 전에 맛있는 샌드위치 가게에 들러 먹을거리를 사고, 따릉이 대여하여 한강을 달린 후, 적당한 장소에서 반납하기로 했다.
카톡에 서로 검색한 내용을 보냈다. 지도 이미지를 머릿속에 넣어 그곳을 찾아가기로 한다. 어쩌면 머릿속으로 길찾기 시뮬레이션이 자동으로 되는지 모른다. 가 봐서 대강 흐름이 파악되는 곳이라, 대강 여기서 이렇게 저렇게 가야지가 된다. 그러나 실제 경험과 시뮬레이션은 차이가 있으므로 퇴근길에 경유하는 곳이어서 지나가다가 자전거에서 내려 그 곳의 사진을 찍었다. 지나가는 것과 머무는 것은 달랐다. 지나가며 본 풍경이 사진에 담기자, 우리의 풍경이 되었다.
"여기가 우리가 만날 곳이야. 예쁘지?"
"우와~ 멋진데!"
희한하게도 여행의 설렘이 느껴졌다. 친구랑 만나기 위해 지역을 먼저 선정하고 식당을 검색하여 맛집을 찾는 경우, 그렇게 먹으러 가는 만남에서는 미각의 즐거움에 집중하여 기대한다. 이번에는 자전거를 타고 달릴 예정이라 여행하는 것처럼 길을 찾고, 길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과 날씨를 경험하고 신체활동이 뒤따르니, 오감의 즐거움, 아니 그 이상의 설렘이 느껴진다. 여행이 종합선물세트라고 했던 것이 떠오른다.
따릉이 바구니에 담은 샌드위치
마침내 친구와 만났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이 곳 샌드위치는 정성이 있었다. 친구가 가자고 했던 이 곳, 간판도 잘 보이지 않아 언뜻보면 여기 맞나 싶은 곳이었지만, 샌드위치에 만족하여 다음에 다시 들러보고 싶었다.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 두가지 샌드위치를 따릉이 바구니에 넣고, 퇴근하며 지나가는 길에 봐두었던 그 근처를 가자고 했다. 원래는 좀더 달린 후에 한강을 바라보며 먹고 싶었지만,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가장 가까운 식탁형 벤치에 가자고 했다. 따릉이를 타고 천호 나들목을 지나자마자, '저기야.'를 외치고 곧바로 멈췄다. 친구는 식탁이 있는 벤치를 보며 감탄했다.
“오오, 여기 좋다!”
나는 샌드위치를 꺼내서 먹기 전에 샌드위치와 자전거와 석양을 찍었다. 사진 찍는 것보다 먹는 것이 먼저였지만 왠지 이 순간은 사진 앵글 이런 거 잴 겨를도 없이 일단 찍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겨우 하나 남겨둔 사진. (위에 있다.)
샌드위치 포장을 풀었다. 큼직했다. 따뜻한 것을 한입 베어 물었다. 아보카도와 베이컨이 한입에 들어와 섞이며 부드러운 맛의 조화로움을 느끼는 순간, 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치즈, 뜨겁게 그릴에 구운 오트밀 식빵의 오도독함, 재료가 푸짐하게 들어가 옆으로 삐져나오는 샌드위치였다. 손에 묻더라도 괜찮았다. 먹는 재미와 입안에 들어간 따뜻한 재료들을 천천히 씹으면서, 이걸 만든 주인장의 정성이 그려져서 만족스러웠다. 맛있는 걸 먹고 있다는 증거가 내 손에 흐르고 있었다. 눈앞에 화장실이 있으니까 마음은 편하고.
이제 한번 달려보자
우리는 잠실쪽으로 좀더 달려보자고 했다. 따릉이 대여시간 1시간 30분이 남았다. 친구는 잠실철교까지만 가보았다고 한다. 거길 지나야 잠실이다. 그럼 내가 친구보다는 길을 더 많이 다녀봤으니, 앞장서기로 했다. 좀 달리다보니 친구는 뒤쳐져 있었다. 오늘 내 속도는 평속보다 좀더 여유를 부려야겠구나. 친구와 발맞추기 위해서. 주변의 풍경을 두리번거릴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아직은 핸들 잡은 손이 긴장을 더 하고 있지만.
친구는 내 뒤에 있었다. 잘 오고 있는지 한번씩 뒤를 슬쩍 보기도 하면서, 안 보일 때는 휴식공간에서 세워두기도 하면서 함께 달리길 기다렸다. 뭔가 든든한 기분으로 달리다가, 석양이 마지막 노을빛을 내는 한강물을 보고 수신호를 했다.
'여기서 쉬자.'
뒤에서 소리가 난다.
“여기서 쉬자고? 좋아.”
잠실쪽에 오면 사람들이 가장 많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앉아 있거나, 테이블에 앉아 있다. 사람들은 한강의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이 곳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사람들, 치킨을 먹는 사람들, 맥주를 먹는 사람들. 모두 이 분위기를 함께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배가 찼으니 아까 먹지 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로 했다. 차 한잔을 곁들이며 테이블에 앉아 도시의 불빛과 노을진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 좋다~" 이 말이 나왔다.
내가 네 곁에 있어.
친구랑 나는 오늘 참 좋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한강으로 향한 여유로운 만남에서 만남의 목적을 잊었다. 그 목적을 잊었다기보다,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지난 주 전화하여 내가 힘들었던 것을 푸념하면서 친구와 대화하는 사이에 차츰 가라앉았고, 그 뒤로 직장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정해가고 있었다. 생은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견딜 수 있는 방향으로 걷게 하니까. 친구에게 내 생의 방향을 전했다. 우리는 노을빛처럼 조용히 있었다. ‘너의 결정을 응원한다’는 빛깔이 노을빛일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나의 속상함은 가라앉아있었고, 오늘 친구를 만날 작은 여행을 서로 계획하는 동안 설렘을 느끼며 감정이 변환!되었다.
그래,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네 옆에 있어.'가 아니었을까. 힘들었던 것이 힘나는 것으로 만드는 그건, ‘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