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게 놀던 어른의 베스트 놀이
어릴 적에는 지금보다 더 소심했다. 과격한 친구들을 대하는 것은 부담스러워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노는 친구들에게 가서 시간을 함께 보냈다. 과격한 친구들은 서로 쫓고 쫓아다니면서 그렇게 놀았다. 학교 복도에서는 못 뛰니까 운동장을 많이 뛰어다녔다.
소심하기는 했지만 나는 운동을 꽤나 잘했다. 단거리 달리기는 적당히 할 뿐이었지만, 줄넘기, 훌라후프, 뜀틀 등을 잘하는 민첩함이 있었고, 오래달리기는 1,2등 정도 해주는 지구력이 좋은 어린이였다. 운동에 대한 부심이 약간은 있었다. 담임 선생임이 내게 시범을 보이는 역할을 시킴으로써 운동 자부심은 공고해졌다.
그런 내게 고무줄, 술래잡기 등은 재미있었지만, 과격해보이는 뼈다귀놀이 등은 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 동네에서 그러한 놀이를 하는 애들이 거의 없었다.
어릴 때 뼈다귀 놀이를 해본 것도 같다. 어떻게 하는지 알고는 있으니까. 어렴풋이 그러한 놀이를 멀리했던 느낌이 난다. 뼈다귀 양쪽의 원에서 다리 사이를 통과하는 동안 상대 팀의 공격이 너무 억세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마 해본 경험은 몇 번 있었을 텐데, 거의 기억은 나지 않는 걸 보니 하다가 일찍 아웃되어서 흥미가 없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정규 체육시간에는 놀이 같은 것을 잘하지 않았다. 기능을 익히기에 바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집밖에 나가면 뛰어노는 동네 친구들이 많아서 놀 시간은 많았으니까. 그래도 땅바닥에 뼈다귀 모양만 그려도 되는 이 놀이를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우리 동네 아이들이나 나나 별로 선호하지 않았던 놀이임에 분명하다.
아이들에게 전래놀이를 알려주기 위해서 놀이를 직접 해보고, 그 안에서 느낀 점을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서 지도 방법 등을 고민하는 모임을 했다. 뼈다귀 놀이는 알고는 있지만 해본 기억이 없어서 그냥 한 차시 배우고 말리라 했다. 20명 가까운 참여 인원들을 두 팀으로 나누고, 10명을 또 다시 반으로 나눠서 5대 5로 놀이를 했다. 5명이 한 원에서 다리를 건너 다른 편 원으로 건너가야 한다. 다리 양 옆에서는 상대 팀들이 우리를 밖으로 잡아끌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지나가기만 하면 무조건 손을 잡아채여서 끌려나가거나, 밀려서 넘어질 것이 뻔했다.
‘저 사이를 지나가는 것이 가당키나 해? 지나가자마자 밖으로 끌려나갈 텐데.‘
‘이런 놀이가 뭐가 재미있다고 하는 거지?‘ 내 생각은 이랬다.
맨 먼저 상대 팀이 시작했다. 나는 밖에서 상대를 너무 힘으로 밀거나 끌지 않기 위해서 적당히 잡으려고 했다. 상대팀들은 잔뜩 긴장했다. 우리 팀이 지나가기만 하면 손을 뻗어서 끌어낼 준비를 하고, 눈을 부릅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어이, 어이, 지나가기만 해봐. 우리가 그냥 확~ 밀어버립니다.”
놀이를 한 지 꽤 지나다보니 사람들이 많이 친해지고 재미있게 됐다. 처음에 조심스럽게 놀던 것과 달리 점차 놀이를 즐기는 모습의 어른들이 되고 있었다. 이렇게 큰소리도 치면서 상대를 적당히 긴장시키는 재미에 서로들 깔깔 댔다. 상대팀들은 심호흡을 하더니, 놀이를 꽤 지도했던 협력강사 선생님과 함께 허리에 손을 잡고 냅다 뛰어갔다. 5명이 쪼르르.
밖에 있던 우리 팀은 갑자기 뛰는 상대를 보고 당황했지만, 사전에 이야기한 대로 오른편에선 밀고, 왼편에선 팔을 잡아 밖으로 끄집어 내어 두 명이 빠졌다.
“꺄악”
“어머나”
하면서 두 명이 밖으로 나갔다. 한 명은 손을 끌려나오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과격하게 데리고 나왔지만, 그냥 앉은 정도라고 해야할까. 그런데 나머지 세 명이 반대편 원 안에 안전하게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럴 수가!”
3명이 살았다는 것에 놀랐다. 세 명은 환호하고, 기분 좋아했다. 밖에 나간 두 명은 “우리가 희생한 거야. 그러니 두 번 더 왕복 잘해야 해요!” 라며 희생정신에 대한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밖에서 공격을 하던 우리 팀은 좀더 심기일전하고, 이번엔 잘해봐야겠다 했다. 그렇다고 피터지는 놀이가 되는 건 아닌지 우려할 것이다. 이것은 놀이다. 강아지가 장난으로 물 때 안 아프게 무는 것과 화가 나거나 공격할 때 무는 힘이 다른 것처럼, 우리도 놀이를 할 때 쓰는 힘은 그것과 같다. 놀이를 하면서 도의상 적당한 힘을 쓰고 있었다.
상대는 한 번 더 3명이 우르르 출발했다. 우리는 맨 앞에 선 항상 뚝심있게 놀이를 하며 밀어붙이는 분이 팔을 휘저으며 뛰는데 우리 팀의 손에서 미꾸라지 달아나듯이 죽죽 미끄러졌다. 두번 째 왕복을 성공했다. 맨 뒤에 약체였던 팀원은 까르르 웃으면서 누군가 잡아끄는 힘에 그냥 버티지 않고 끌려나갔다. 이제 두 명 남았다. 우리는 마지막 두 명을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세 번 왕복하는 것은 두 번째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뼈다귀 놀이 첫번째 시도가 끝났다. 마침내 우리 팀이 안에 들어가는 차례였다. 나는 긴장을 했다. 나는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힘도 없고, 자신만만한 말도 내던지지 못하고, 그저 뒤에서 따라가는 역할을 했다. 우리 팀에 맨 앞에 선 어른이 우리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달리기 시작하면 곧바로 내 뒤에서 따라붙어서 오셔야 해요. 그래야 저 원안으로 빠르게 들어갈 수 있어요.”
자, 준비 시작. 그 분이 달리기 시작하자, 우리는 바짝 붙어서 우르르 뛰었다. 바깥에서 내미는 손들이 우리를 스쳐지나갔다. 달려가는 우리를 잡지 못한 것이다. 대신 맨 앞 사람은 밖으로 금을 밟으면서 끌려나갔다. 나머지 네 명은 살았다. 우리는 환호했다. “우와!”
뭔가 전율이 느껴졌다.
“뭐야, 이거 재밌는데?“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우리 네 명이 쏜살같이 달려서 다시 원래 원 안으로 들어갔다. 한 번 왕복했다. 또다시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뼈다귀 놀이를 두 번째 시도를 하다가 나는 끌려나갔다. 하지만, 내게 쏠린 시선 때문에 나머지 두 명은 또 안전하게 달려나갔다. 상대팀과 우리 모두 놀이를 하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뭐지? 이 기분?”
이 과격한 놀이가 너무나도 흥분되고 재미있었다. 상대 팀이 우리를 끌어내려고 벼르는 동작과 그걸 헤치고 우리의 미션을 달성했을 때의 그 짜릿함은, 놀라웠다.
나는 이 놀이를 아이들에게 지도하고 싶었다. 놀이 공부가 막바지에 갔을 때, 선생님께 나의 걱정을 말씀드렸다.
“선생님, 제가 여기서 배운 놀이 중에 이 놀이가 정말로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과격하게 놀다가 다칠까봐 쉽게 지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때 선생님께서는 이런 답변을 주셨다.
“ 애들 힘이 팔팔할 때 이 놀이를 하면 다치겠죠. 어떡하면 될까요? 다른 놀이, 술래잡기 등으로 한참 놀게 하고, 기운이 빠진 다음에 다음 놀이를 할 때, 이런 놀이를 하면 되죠.“
”아, 힘을 좀 뺀 다음에.“
나는 어릴 때 놀이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꼈지만, 어른이 되어 정식으로 해본 뼈다귀 놀이는 희열이 느껴지는 놀이였다. 당시 놀이를 할 때 자료 수집을 위해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는데, 그때의 내 표정을 보면 활짝 웃고 있었다. 난 분명 오들오들 떨면서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눈을 감고 마치 귀신의 집을 들어가듯이 ‘엄마야, 나 살려라’ 하고 달려간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신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끝나고 날 때 내 기분은 스릴을 만끽하고 난 뒤에 오는 텐션이 업이 된 느낌이었다.
아, 알 수 없었다. 내가 어릴 때 그토록 피해왔던 놀이이지만, 그동안 소소한 놀이에서 느껴볼 수 없었던 그 기분을 처음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날, 놀이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 바로 이 뼈다귀 놀이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지도할 때 몇 가지 조심할 점들을 생각해보고 지도하면 이 놀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점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놀이란 다양한 기분을 맛보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집단 놀이를 하면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기분이 있는데, 인간의 과격함을 놀이를 통해서 분출하는 것이 본능적이란 뜻일까? DNA에 우리가 놀이를 통해 생존 전략을 배워가는 본능적인 회로가 새겨져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것도 좋지만 함께 하면서 웃고 즐기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 호르몬을 내보내주는 것은 확실하다.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과 있을 때 나오는 호르몬. 잡히지 않으려고 피하고 직진으로 달리는 것뿐인 놀이지만 그 어떤 보드게임과도 맞먹는 재미였다. 어떤 이에게는 흥미로운 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