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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브 Nov 20. 2023

어린시절을 장식한 돌멩이, 망줍기, 땅따먹기

이 놀이에 빠지면 생기는 증상

땅에서 좋은 돌을 발견하면 기뻐 들고 다니던 어린이     


장난감이 별로 없던 시절, 아니 있긴 있었다. 내 친구들은 레고로 블록 쌓기를 하고 놀 때에 나는 그다지 장난감을 갖고 놀지 않았다. 동네 아이들과 아파트 밖에서 뛰어노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다. 물론 레고를 산 적도 없다. 내 친구는 어릴 때 레고를 갖고 놀지 못했던 기억 때문에 자신은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믿고 있다. 또 다른 친구는 자신의 어린시절 레고를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어 아들에게 레고를 원하는 만큼 사주었다. 그러나 그 레고를 보며 좋아하는 건 내 친구였다. 본인의 소망이 곁들여진 장난감임을 친구도 인정한다.


나도 어릴 적 중산층의 상징처럼 판매되었던 레고를 갖고 놀지 못했지만, 창의적인 일을 할 때 기쁘다. 창의적인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기보다는 기존의 것에 새로운 것 한 방울을 더해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레고가 창의성을 향상시켜주는 것에 관련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타고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레고 블록 같은 장난감이 없어서 밖에서 놀았다는 말이 이상하지만, 집에 갖고 놀 것이 거의 없으니 밖에 돌아다녔다. 그 당시에는 그런 친구들이 많아서 밖에서 신나게 뛰어놀 수 있었다. 놀이를 밥먹듯이 할 수 있는 나로서는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낸 셈이다. 늘 부족하지 않게, 풍족하게 놀았으니까 유복한 놀이시절이었다.     


그런 내가 땅바닥을 보고 다니면서 주웠던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어디 떨어진 동전 없나 하면서 실제로 동전 몇 개를 주은 것과 납작하고, 작달막한 돌멩이였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돌멩이였다. 그래서 학교 등교시간에 지각하는 날처럼 바삐 가야할 때를 빼고는 땅바닥에서 여유있게 돌멩이를 감별하면서 줍고는 했다. 그리고 소중하게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이것이 어디에 쓰이는가 하면, 바로 놀이에 쓰인다.      


사방치기, 망줍기, 1234, 우리 동네는 땅따먹기     


전래놀이 중에 위 네 개 중에 하나는 들어봤을 것이다. 다 들어본 경우도 있을 것이다. 동네마다 다르긴 하지만 네 가지 이름이 같은 놀이를 지칭하기도 하고, 또 다른 놀이를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바닥에 판을 그려 숫자 1부터 8까지 순서대로 쓴다. 그리고 때로는 진화된 놀이로 하늘을 그리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처음엔 난이도 조절을 했는지 8까지밖에 없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하늘부분을 전파하여 하늘이 생겼다. 이 놀이를 위해 소중하게 돌멩이 하나 품속에 갖고 다녔다.      



놀이 규칙 첫 번째 

나의 망(돌멩이)을 순서대로 바닥에 던져 놓는다.
 단 금을 넘으면 안 된다.     


이 놀이를 배우고 나서는 처음엔 아무 돌멩이나 자기 말을 하나 주워서 시작했다. 그러나 놀이의 규칙상 돌멩이는 내가 원하는 위치에 딱 떨어져서 ‘착지’해야하고, 더이상 굴러가면 안 된다. 판에 써 있는 금을 밟거나 다른 칸으로 가면 아웃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던지고자 하는 위치에 가야하는 것이 첫 번째 규칙이다. 그러나 아무 돌멩이는 또르르 굴러간다. 때로는 돌멩이 자체가 너무 가벼운 경우 관성의 법칙을 이기지 못하고 더 멀리 미끄러져 가기도 한다. 거리를 가늠하고 던지는 힘 조절과 함께 돌멩이의 모양도 중요한 포인트였다. 몇 번 던지다보면 돌을 바꾸러 가기도 한다. 주변에 화단이 많고, 자연그대로의 공터가 많다보니 돌멩이를 구하기는 쉽다. 그러나 땅따먹기에 적합한 돌멩이는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평소 잘 찾아놔야 한다. 납작하고, 적당한 무게와 크기는 중요했다. 그런 돌멩이를 우연히 발견하여 1번부터 8번까지 순조롭게 진행된 경우, 그 돌멩이는 나의 소중한 망이 된다. 며칠 갖고 다녀야 하는 돌멩이가 되는 것이다.

친구들과 놀다가 오늘 땅따먹기를 할지, 고무줄을 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늘 어떤 것을 할지 대비하여 들고 다녔다. 아무거나 던졌다가는 3번까지 가기도 전에 동네에서 꽤나 잘하는 아이들에게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놀이 규칙 두 번째

돌아올 때 망이 놓인 순서의 옆 자리에서
망을 주워서 잘 갖고 들어온다.    

  

아웃이 되지 않으면 계속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이 웬만해서는 금을 밟지 않고 오거나 한쪽 발만 서 있는 채로 땅에 떨어진 망인 돌멩이를 조심히 들어올리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거기까지 무사히 마쳤어도, 바로 앞에 높인 숫자 1, 2, 3번 칸 정도를 제외하고는 망을 자리에 잘 착지시키기도 어렵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4, 5번 칸이다. 4의 구석에 착지라도 한 경우, 5번 칸에 서서 구석까지 손을 뻗어 짚어야 한다. 어린이들이라 해도 동네 동생들과 함께 놀 경우에는 놀이 상대의 키와 운동신경을 고려하여 우리들끼리의 규칙을 하나 정한다. 원래는 땅바닥에 손 안 대고 짚기가 원칙이지만, 동생들이나 초보자에게는 두손 짚는 건 허용, 두발로 줍기, 이런 식으로 관용을 베풀기도 했다. 그렇게 놀이를 즐겁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동네에서는 약한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이 대대로 전해져왔었다.   

   


놀이규칙 세 번째

끝까지 간 경우,
뒤돌아서서 망을 던져 착지한 칸이
내 땅이 되는 땅따먹기     


1~8번 칸까지 순환을 하고 나면 뒤돌아서서 망을 던져 내 땅을 결정한다. 그리고 내 방식대로 영역 표시를 한다. 대개 별을 그리거나, 빗금을 치거나 했다. 자기만의 영토를 표시한 후에 상대는 자신의 땅을 밟지 못하게 되고, 나는 그곳을 편하게 두발을 뛰며 지나갈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재미있는 놀이가 시작된다. 상대의 땅을 밟을 수 없으니 조심조심 한쪽 발로 뛰면서 무사히 8번까지 순환하고 망을 주워야 한다. 그러나 상대의 땅을 밟을 수 없으니 망을 주울 때 한 칸을 건너 손을 뻗어야 하는 경우가 있어서, 다시 같은 번호를 재도전 해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난이도가 어려운 놀이가 되었다. 하지만 성공해냈을 때의 기쁨은 기본 놀이 때와 다르다. 이 즐거움 때문에 땅따먹기는 계속 됐다.   



  

돌멩이는 보물 몇 호?     


그래서 이름이 땅따먹기였고, 망줍기였고, 1234였다. 망줍기를 잘 할만한 돌멩이 하나를 소유하고 있으면 동네 애들 만나서 “오늘 1234 할래?” 하곤 했다. 놀이 하는 아이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아웃되면 번갈아가며 앞서 친구가 했던 부분부터 다시 이어서 하곤 했다. 그때 이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소수의 인원일 때 가능했다. 2명에서 4명 정도일 때 이 놀이를 했다. 돌멩이와 땅바닥만 있으면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 수 있었다. 땅바닥에서 얻은 소중한 놀잇감은 말할 것도 없이 보물 2-3호 정도는 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학교에서 망줍기를 하면서 많은 수의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놀이의 방식을 살짝 변형한 것을 어른들의 놀이터에서 배웠다. 그 방법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최근 변형된 놀이 규칙

하늘에 모두 들어가기     


일단 하늘을 놀이의 한 편이 모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그러나 너무 헐렁하지도 않고 빡빡하지 않게 그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도 하다보면 노하우가 생겨야 하는 부분이다.


한 반에 20명이라면 두 개의 망줍기 판을 그려주면 이렇게 놀이할 수 있다. 노랑과 파랑이 놀이를 한다고 했을 때, 노랑에 5명이 있고, 파랑에 5명이 있다고 하자. 먼저 노랑 편이 놀이를 시작하기 위해 학생들의 순서를 정해 놓는다. 1번 학생이 망을 1번 칸에 놓고, 판을 밟고 7-8까지 갔으면 한번에 뜀을 뛰어 하늘에 들어간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발을 딱 붙이고 있어야 한다. 2번 학생은 망이 있는 칸을 제외하고 밟아서 하늘에 들어간다. 하늘에 들어갈 때는 금을 밟지 않고 한번에 뜀을 뛰어서 잘 착지해야 한다. 이렇게 5번까지 들어가면 하늘에 모두 도착했다.      


이때 하늘에서 1번이 나와야 한다. 단, 한번에. 이것이 이 놀이의 새로운 재미로 추가된 부분이었다. 만약 1번이 방향이나 자리를 잘못 선택하여 다른 학생들로 길이 막혔다면 이 팀은 아웃, 상대팀이 놀이를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하늘에 어떻게 들어가는 것이 좋은지 아이디어를 내고 자기들끼리 회의를 한다. 그리고 몇 차례의 도전 끝에 성공하면 마지막 6번이 망을 줍고 들어오면 된다. 그리고 2번 칸에 도전한다.      


5명이 되어도 좋지만, 6-7명이 할 때 하늘에서 나오는 방식으로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다. 우리들이 꽉찬 하늘에서 각자 나갈 자리를 생각하며 한번에 뜀뛰기로 들어왔는데, 다시 나가려고 할 때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어떤 팀은 너무 안쪽에 들어간 자기 팀 사람을 도와주면 안 된다는 규정이 없어서 이 친구를 아예 들어올려서 점프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니 장난감 뽑기처럼 집게로 들어올려져서 나간 것이다.



이 팀은 성공했었다. 그러나 놀이 선생님이 우리들을 불렀다.      


“여러분 과연 성공일까요?”      


우리는 협동심을 발휘했는데, 이상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한 명이 말했다.


“그래도 뭐로 가도 다들 나오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아니예요. 놀이는 주도성이에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둬야하고, 혼자서 해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거예요. 누가 들어올려준 건 자기가 한 게 아니예요.”     




그 순간, 놀이의 중요한 재미가 어린이들이 어떤 도전 과제를 스스로 할 수 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임을, 그 말을 지금 들은 거였다.


내가 어릴 때 노는 게 그렇게 재미있었던 건 바로 동네의 놀이 잘하는 누나, 언니가 되면서 내 능력이 커지는 기쁨이 있었음을 몰랐다. 재미라는 속에 숨은 이런 이치를 지금의 어른들은 느끼며 자랐을 것이다. 그럼 다시 아이들에게도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겠구나 싶었다. 우리 동네에 대대로 전해주어야 한다.




많은 수의 인원들이 두 팀으로 나누어 할 수 있도록 변형된 놀이 방식을 이용하면 아이들은 뛰어나오는 과정에서 서로의 비결을 공유하고, 작전을 짠다. 그러나 지도하는 사람들은 팀원들이 혼자서 뛰어나갈 수 있는 부분은 그대로 두게 하는 것, 그것을 꼭 지도해줘야 한다.


어른인 내게도 우리 팀원들이 가득 모여있는 하늘에서 뜀을 뛰어 밖으로 탈출하듯이 나갈 수 있었을 때 그 희열은 잊지 못할 경험이었으니까. 우리 아이들도 이 재미에 돌멩이 하나 집어서 품속에 간직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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