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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브 Nov 06. 2023

딱지치기에서 배우는 고수의 모습

딱지치기,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어?

딱지치기를 하지 않았던 이유


어렸을 적에 딱지를 접어서 노는 아이들을 동네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소리가 엄청났다. 딱, 딱, 딱, 우와!!! 옆에서 구경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의 딱지가 뒤집어지면 고함을 함께 쳤다. 그런 환호 속에 딱지를 수북이 딱 아이는 의기양양해보이고, 딱지를 다 잃은 아이는 더이상 놀 것이 없어서 옆에 아이에게 하나만 빌려달라고 하면서 다시 딱지치기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잘 하는 아이들은 요령을 알아서 딱지를 딱딱하게 만들고, 납작하게 만들고, 자신만의 기술로 공격용 딱지를 만들었다. 주머니에 오래된 딱지를 갖고 다니면서 동네 아이들을 휩쓰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내 눈에는 재미있어 보이지 않았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내 소유를 갖고 놀아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구슬치기처럼 자기 소유의 구슬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규칙에 맞게 가지고 놀면서 따거나 잃는 것이 내 구미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잘만하면 딸 수 있는데도, 잃는 것에 초점을 두어 그 불쾌감을 느끼기 싫었다.


둘째는 딱지나 구슬치기를 하는 친구들은 나랑 놀지 않는 다른 성별의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남녀가 선호하는 놀이가 다르긴 했다. 그런 내가 딱지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도 딱지란 주변의 종이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놀이이건만 입문조차 해본적이 없다.



우유곽으로 딱지 놀이하며 든 생각


우유곽으로 딱지접기를 할 줄 아는 아이들이 많았다. 내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작은 180ml 우유를 다 마신 후에 안을 잘 헹군다음 말려두면 딱지를 만들 준비가 다 된 것이다. 우유곽을 십자가 모양으로 잘라낸다. 그런 후에 가운데 바닥을 중심으로 바람개비처럼 접더니 한바퀴 돌아가며 잘 접어 얹으며 딱지를 만들어냈다. 정말 간단했다.


아이들과 한 시간 동안 딱지를 접고 꾸미고, 남은 시간에 대결하며 노는 걸 해봐야겠다 싶었다.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과 딱지를 만들고, 꾸미라고 했더니, 예쁘게 꾸미려고 노력했다. 스무 명 모두 자신만의 무늬를 만들면서 딱지의 날개 하나하나마다 색을 입히는 아이도 있고, 가지각색으로 꾸몄다. 어떤 아이는 자신의 이름만 쓰면서 그 자체로 멋지다고도 했다.


아이들은 딱지치기 규칙도 잘 알았다. 상대방의 딱지를 바닥에 두고, 내 것을 내리치면 상대의 것이 뒤집히면 딱지를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팔 힘이 세거나, 요령을 터득하거나, 우연히 상대의 딱지가 뒤집어진 경우 아이들은 환호를 하며 상대의 것을 땄다. 우유곽 하나로 딱지를 하나씩만 만들었기에 하나를 잃으면 더이상 놀이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몇명만 빼고 나머지들은 아이들의 대결을 구경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두 아이가 남았다. 둘 다 딱지가 수북했다. 딱지 수만큼 대결해야했다. 딱지를 서로 넘길 때마다 온 아이들이 그것을 보면서 환호하고, 열광했다. 딱지가 서로 왔다갔다 하면서 결국 한 아이가 스무개의 딱지를 다 땄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부러워했다.


1인 1딱지를 만든 것이기에 “이제 딱지 만든 사람에게 돌려주자.” 라고 하자, 딱지를 열심히 따며 반을 평정한 아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네에?” 하며 “에!!” 하면서 딱지를 허공에 날렸다. 아이들은 자신의 딱지를 찾아갔다. 반을 평정한 아이는 돌려주라는 말을 듣자마자 뭔가 허무하단 표정이었다.


그 이후로 딱지를 갖고 잃고, 따고 하는 방법으로 노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종이 딱지보다 월등한 것이 많은 요즘


종이 두 장으로 십자 모양으로 겹쳐서 딱지를 만들 수 있는 간편한 놀이이지만 요즘 아이들이 놀 때 갖고 노는 걸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딱지를 접는 법을 아는 아이들은 많았다. 아마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들 배우는 것 같다.


몇 년 전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캐릭터 모양을 딴 고무딱지가 유행했었다. 그걸 모으는 아이들이 많았다. 딱지치기의 방식은 유사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이 고무딱지를 갖고 와서 노는 모습을 많이 봤었다. 그리고 딱지를 잃거나 따면서 상대와 겨루는 놀이의 방식으로 아이들은 자신의 딱지 중에서 공격용으로 유리한 딱지를 만들면서 이기려고 했다. 공격용으로 더 유리한 고무딱지를 계속 사서 모으는 아이들을 보면서 딱지 놀이가 놀이로서 좋은지 생각하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그동안 모으고 땄던 고무딱지 한 박스를 사촌동생들에게 물려주는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혹은 고학년이 되면서 벼룩시장에 내놓는 아이들도 봤다. 요즘에도 고무딱지 대결을 하는 아이들이 있으려나?



딱지 하나로 여럿이 함께 놀기


그러나 놀이를 연구하는 사람들 모임에서 첫 시간에 배운 것이 딱지접기와 딱지놀이였다. 15분 정도 늦게 도착했는데, 사람들은 이미 딱지를 접는 중이었다. 나도 강사님께 종이 두 장을 받았다. 옆에 사람의 도움을 받아가며 앞부분 못 들은 걸 배우며, 얼른 접어보았다. 알려준 대로 해보니 쉬웠다.  바람개비처럼 날개를 만들어서, 팽이처럼 돌리기도 되는 딱지도 만들었다. 늦게 와서 옆사람이 알려준대로 하며 딱지를 다 만들고 나서, 여유가 생겼다.


놀이 강사님의 얼굴을 보았는데 강사님이 매우 조용해보였다. 말이 느리고, 연세가 있어보이셔서, 전래놀이를 가르치시는 어르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한 마디 농담(!)을 시도하려고 하시는 것 같았는데, 의외로 웃음이 빵 터졌다. 엇, 재미있는 어르신이네 라고 생각했다.



여럿이 딱지치기하는 재미 포인트


그러다가 이번에는 딱지치기를 한다고 하셨다. 자신의 딱지를 갖고 와서 이름을 쓰라고 했다. 헷갈릴 수 있다고. 일단 딱지치기를 위한 종이는 딱딱한 종이를 갖고 했다. 이 속에 종이 하나를 더 넣어서 좀더 강도를 높이라고 하셨다.


놀이규칙은 상대방과 만나서 10점을 내고 오라고 한다. 그리고 10점을 다 낸 사람은 선생님에게 찾아오라고 하셨다. 딱지치기의 규칙은 가위바위보로 이기면 딱지 공격을 하면서 상대의 딱지를 뒤집으면 1점씩 얻는 방법이었다. 따거나 잃는 것이 아니라 점수를 내는 방식이었다. ‘어, 어렸을 때 했던 것과는 다르네.’


나는 어렸을 때 딱지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거의 넘어간 적도 없었다. 그래서 오늘 처음으로 딱지치기를 해보는 것과 같았다. 10점을 낼 수 있을까? 기대도 하지 않고 시작했다.


먼저 그날 첫날이어서 30여명에 가까운 사람이 있었다. 그들과 처음 만났지만, 서로 인사하고, 가위바위보를 한 후에 이긴 사람이 먼저 공격을 했다. 뒤집어지면 “1점” 하고 기분 좋게 소리질렀다. 점수를 내는 방식이니 다른 사람을 찾아가면 기회가 있었다. 뒤집어지지 않으면 0점으로 아쉽지만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갔다.


나 말고, 여럿이 있기에 점수를 많이 못 냈던 나는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러 다녔다. 열심히 했지만 쉽게 10점이 되지 않았다. 점수를 낼 때마다 신기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또 나이가 많으신 어른도 있으셨는데, 그분들이 딱지치기를 잘하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딱지치기 도사였어!“ 하시는데, 정말 내 딱지가 넘어갔다. 딱지치기를 하면서 내 딱지를 잃지는 않으니 계속 도전을 해나갈 수 있었다.


우리 중에서 가장 먼저 10점을 내신 분은 아까 그 어르신! 전래놀이 선생님을 찾아갔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딱지치기를 하고 계셨다. 무슨 말을 들었길래?


딱지치기가 끝나고 선생님이 그러셨다. 오늘 딱지치기를 하면서 좋았던 점을 이야기해볼까요?


사람들이 그랬다.

“딱지를 잃지 않고 점수를 내는 방식이니까 계속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처음 보는 사람과도 딱지치기를 하자고 말을 하자고 하니까, 금방 말을 틀 수 있어서 좋았어요.”


선생님이 그러셨다. 딱지치기를 통해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명랑하게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거라고. 친구에게 다가가서 말을 하는 방법을 알게 될 거라고.


”아, 이거구나!“

점수내기 딱지치기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딱지를 치기 전 함께 이야기할 수 있고, 같이 치자고 말을 걸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주었다. 그러면서 딱지를 치면서 서로 웃고 살짝 실망도 하지만, (잃지 않으니) 잘 가라고 인사하며 헤어지고. 져도 재미는 있었다는 점이었다.



딱지를 잘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비밀 이야기


딱지를 10점 낸 사람에게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궁금했다. 우리 중에 누군가가 선생님에게 뭐라고 하셨어요? 라고 질문했다. 선생님은 비밀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너무 궁금하다고 해서 계속 알려달라고했다. 선생님이 그러셨다. 학교에서 지도하실 때 10점 먼저 낸 아이들이 의기양양해서 온다고. 그러면 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하셨다.


“10점 땄구나. 잘했네.
가서 잘 못하는 애들한테 대결해서 몰래 져줘.
그리고 이건 비밀이야.“


캬. 전래놀이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에 전래놀이를 배우는 어른으로서, 이 말을 듣고, 마음에 뭉클한 뭔가가 있었다. ‘몰래 져준다’는 표현이 도전정신을 깎아내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잘 못하던 아이가, 비로소 재미를 느꼈던 것이니까. 누군가의 성공 경험을 하는 마중물 같은 거니까.





그 뒤로 나는 점수내기 딱지치기를 행사에서 만난 아이들과 해보았다. 그날 나를 처음 본 아이들이지만 대결하면서 과장되게 이런 표현을 한다.


“이야, 선생님이 진짜 딱지 잘 치는데, 나랑 대결하면 점수 못 가져갈 텐데.”


그러면 아이들은 오히려 더욱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내게 와서 선생님과 꼭 겨루겠다고 한다. 내가 (우연히) 이기면, “아. 역시 잘하시네요.” 하고, 아이들이 이기면 “이야, 내가 선생님을 이겼다.” 하고 좋아한다. 물론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점수를 많이 딴 아이였다면, 내가 사활을 걸고(!) 온 힘을 다해서 딱지를 내리쳤다. 그리고 잘 못했던 아이면 사활을 걸듯이 내리칠 때 살짝 삐끗한다. 물론 져주기 어려울 수도 있다. 딱지를 내리치는 아이가 힘이 없어서 혹은 엉뚱한 데 가서 꽂힐 때가 있으면. 그러면 딱지치기를 요령을 알려주었다. 한 번 뒤집힌 경험을 하면 표정이 밝아졌다.


그 뒤로 나를 보면서 그 때 딱지치기 같이 했던 선생님, 한다. 이걸 계기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딱지치기 스몰토크로 시작된 대화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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