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를 배우는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래놀이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사방치기, 땅따먹기 등일 것이다.
어린 시절에 나도 동네 아이들, 언니, 오빠, 동생들, 내 또래 애들과 놀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학교 끝나고 동네에 모여서 놀다보면 해는 이미 지고 어둑어둑해졌다. 부모가 창밖으로 “00아 저녁 먹어.”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 가서 놀다가 아이들은 하나둘 집에 들어갔다.
내가 주로 했던 놀이는 고무줄 놀이였다. 자동차가 적던 시절이라 아파트 야외 주차장에서 놀았다. 놀이터나 운동장 같은 아이들 배려한 바닥은 아니라 한번 넘어지면 무릎팍이 까지고 상처가 나는 아스팔트지만 그래도 우린 잘 놀았다. 특히 아스팔트가 짙은 회색이어서 시멘트 조각, 석회암처럼 푸석한 밝은 돌멩이를 주워다가 바닥에 망줍기 판 정도는 잘 그려져서 좋았다. 요즘은 아스팔트에서 놀면 걱정을 많이 할텐데, 내 기억에 아스팔트에서 놀이를 하다가 다쳐본 적은 없다.
내 얼굴에 흉터가 하나 있는데 이건 놀이 하다가 다친 게 아니고 애들 따라하다가 다친 거였다. 놀이터에 있는 정글짐에서 친구들 따라 박쥐흉내낸다고 두 다리 걸치고 거꾸로 매당려 장난치다가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때 이마 오른쪽에 흉이 보조개처럼 들어가 있는 거 빼고는 크게 다친 적이 없다. 그 흉악한(!) 상처 때문에 그 뒤로 정글짐엔 잘 안 갔다. 어쨌든 아스팔트에서 노는 걸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던 걸 보면 크게 다친 적은 없나보다.
내가 놀던 때엔 '전래놀이'란 개념을 몰랐다. 우리들에겐 그저 우리의 현대식, 지금의 놀이가 있었다. 학교에서 이야기 들었던 전래놀이는 비석치기, 윷놀이, 고누, 이런 거였는데 우린 전래놀이는 하지 않았다.
우리의 최애 놀이는 고무줄 놀이. 동작이 노래마다 다르고 높이에 따라 도전의 급이 달라지는 놀이로 동네 여자애들은 검은색 고무줄 5개는 기본으로 갖고 있었다. 5개를 이어 매듭을 묶어서 한 줄로 놀기도 하고, 5개를 모두 연결하여 동그랗게 서서 육각형 사각형 삼각형 모양을 만들어 놀았다. 고무줄을 연결했다 풀었다 하니 매듭짓는 법은 잘 했다. 반면 요즘 아이들은 매듭을 잘 짓지 못한다. 고무줄 매듭을 써볼 일이 없어서일까.
주로 여자들은 고무줄을 했고, 비슷한 또래들과 가능했다. 성별이 고루 섞여 있거나 나이대가 펼쳐져 있다몀 이고무줄 말고 다른 것 등을 이용했다 그날 그날 나온 애들에 따라서 놀이는 바뀌었다.
기억나는 것은 주차장 선을 활용하여 상대의 수비를 파고들어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38선 놀이, 숨바꼭질, 얼음 땡 술래잡기, 8개의 숫자를 그려놓고 땅을 정복하는 망줍기를 했다.동그란 원 하나를 그려놓고 상대의 발을 밟아서 아웃시키는 돈까스, 모두가 제자리뛰기로 최대한 멀리 가고 도움닫기를 해수 뛰어온 술래는 남들보다 한 걸음 덜 가서 손으로 터치한 사람 아웃 시키는 놀이-이름은 모른다, 그리고 운동장 같은 훍바닥에선 돌을 쳐서 땅따먹기를 했다. 가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웃긴 놀이도 했다. 이 때에 실시간 짤이 많이 나왔다. 걷다가 멈추는 동작에서 왜 이렇게 웃긴지, 술래는 왜 그리 매의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다시 ‘무궁화~’ 구호를 안 외치는지, 술래가 누구냐에 따라 배꼽쥐고 웃는 때도 있었다. 일부러 어려운 동작으로 멈추며 웃기고 싶은 욕구를 마음껏 펼치는 애들도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이 시간에는 참가자들은 웃긴 동작이 하나씩은 나온다. 무궁화 꽃이 하고 말하다가 마지막 말을 갑자기 1초 안에 ‘피었습니다‘ 하고 외치는데 누군들 우스꽝스런 동작으로 멈추지 않을까.
중학교부터는 밖에서 놀이를 한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공부하러 들어갔는지 우리는 더이상 밖에서 놀지 못했다. 간혹 동네 동생들과 놀 시도를 했지만 정서적으로 통하지 않아서 점차 나가지 않은 것 같다. 결국 내 또래들과 어울리며 수다를 떨거나 독서실을 다녔다. 그 이후에 놀이는 내 삶에서 사라져갔다.
가끔 친구 집에 가면 보드게임 등을 갖고올 때도 있지만 오랫동안 놀지는 못했다. 보드게임에서 지면 왜 그렇게 기분이 나쁘던지. 내 어릴 적에 부르마블이 획기적이었는데 나는 늘 실패하였다. 부르마블로 돈을 번 친구들은 기분이 좋았지맘 나는 호텔 사업에 실패하여 파산하고 은행 봉사활동을 하며 보드게임을 즐겼다.
내 놀이의 기억은 여기서 끝이다.
학교 안에서 노는 걸 보면 요즘 애들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도둑과 경찰 술래잡기를 좋아한다. 학교 안에서도 고무줄 놀이를 보기 어렵다. 가끔 학교 안에 그려진 망줍기나 달팽이 놀이를 하는 것 같은데, 달팽이 놀이 그려진 것이 놀고 있을 때가 더 많았다. 아이들은 그냥 뛰어노는 걸 좋아했다. 나는 아이들이 나 어린시절 때처럼 '알아서 잘 놀 거' 라고 생각하고, 자유롭게 두었다. 뛰어다니기만 해도 저렇게 재미있을 까 싶은데 내가 어릴 때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어느날 모임에서 나이가 드신 선배님께서 몸이 아프다며 치료를 받으러 가야겠다고 하셨다. 뭐 하다가 이렇게 아프냐고 물어보니, 전래놀이를 연구하고 배워서 아이들을 가르치러 학교에 나가신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전래놀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오늘은 8자 놀이를 했는데, 아이들이랑 많이 활동을 해서 허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분은 요즘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요즘 애들이 놀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지금보다 더 놀아야해요. 제가 예전에 <놀다 보면 크는 아이들> 읽은 적 있는데요. 놀이가 실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이야기한 것이에요.“(2021년에 보리출판사에서 출간함)
“전래놀이를 가르치면 아이들이 더 놀고 싶다고 해요. 소외되는 아이들에게도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돼요.“
“맞아요. 왕따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나는 그분들의 대화를 들으며 놀이를 지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일차로 놀랐다. 요즘 아이들이 놀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알았지만, 놀이가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보여주는걸까? 거기다가 더 적극적으로 바라본다면 전래놀이로 놀면 아이들 관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놀다보니까 사회성이 생겼다는 뜻인가? 궁금해서 물아보았다.
“어떻게 관계 문제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건 알 듯 한데요. 왕따 문제는 어떻게 해결이 가능한가요?”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놀이 연구 지도사의 노하우라 뭐 밝히진 않겠지만 우리 어린 시절에 했던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놀고 싶을 때 “나랑 놀 사람” 하고 엄지를 치켜드는 것을 슬쩍 알려주라고 하셨다.
그 모임 이후 전래놀이가 그렇게 효과가 좋다고? 생각하며 놀이의 효과성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마침 전래놀이 지도자 양성과정을 한다는 것을 듣고, 관심이 생겼다. 수강신청을 하고, 얼른 결제완료를 눌렀다. 알고보니 인기 있는 강좌였던 것이다. 다행히 나는 인원 안에 들어왔다. 30명을 뽑았는데, 나중에 졸업할 때 보니 10명 정도는 출석일이 모자라서 되지 않았다. 나는 꾸준히 열심히 해서 지금 수료를 앞두고 있다.
맨 첫날이 떠오른다. 전래놀이에서 뭘 배울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칠 만한 것인지, 내가 알고 있는 그 전래놀이가 맞는지 말이다. 실은 내가 앞에서 했던 놀이말고도 뭐가 더 있을지 민속놀이 같은 것일까 (연날리기, 팽이치기 등)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처음 간 그곳엔 첫날이라 출석률 거의 90퍼센트에 가까웠다. 나는 살짝 늦어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 딱지접기 수업에서 사람들은 열심히 종이를 접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 가서 처음 만난 놀이지도사 선생님께서는 뭔가 에너지가 많지 않아보였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우리를 지도해주려고 강연장 앞에 서 있었다. 내가 생각한 놀이 지도사 선생님 하면 떠오르는, 경쾌하고 밝은 그런 분이 아니었다. 레크레이션 강사를 떠올리면 내 이미지가 거의 들어맞을 것이다.
이분은 조용하고, 말을 툭툭 내뱉듯 하는 듯했다.
‘이분이 설마 앞으로 우리를 가르친다고? 설마, 딱지치기 달인이신가 보지. 몇 차례하고 바뀌겠지? 릴레이 강사처럼.’
오늘은 딱지접기를 하는 날이니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나는 늦었지만 보조 샘이 종이 두장을 주셔서 조금만 따라해보라며 알려주셨다. 딱지를 접어보자며.
나는 딱지를 접어본 적이 없다.
2화 예고, 딱지치기가 왜 재미있는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