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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의자포U Oct 27. 2024

11. 어른의 말은 강돌처럼 둥글고 단단해야 합니다


인간이 나이 든다는 건,

자신의 언어를 정밀하게

세련화하는 과정이다.

- 비트겐슈타인



태왕릉은 무너져내렸지만, 장군총은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태왕릉과 장군총은 옛 고구려의 수도인 국내성, 지금은 행정구역 상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 있습니다. 태왕릉은 광개토대왕릉으로, 장군총은 장수왕릉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장군총은 동양의 피라미드라고 불릴 만큼 그 크기와 견고함이 상당합니다. 수많은 시간을 거치고도 굳건하게 서 있습니다. 반면 규모가 몇 배 더 큰 태왕릉은 돌무더기가 무너져내려 마치 언덕처럼 보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요? 먼저, 무덤을 쌓는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석총이라고 불리는 이런 돌무덤을 쌓을 때는 자갈이나 돌을 넣어 무덤 안쪽을 채우고, 바깥에는 피라미드처럼 큰 사각형으로 조각된 돌을 세웁니다.


그런데 태왕릉과 장군총은 안에 들어간 돌이 다르다고 합니다. 태왕릉에는 안쪽에 산돌을 넣었고, 장군총에는 강돌을 넣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해 급하게 무덤을 지어야 했기에 강돌과 산돌을 가려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반면 97세까지 장수했던 장수왕은 재위 기간이 거의 80년으로 충분히 여유를 갖고 강돌로 무덤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산돌과 강돌이 뭐가 달라서 이런 차이를 만들었냐고요? 강돌은 강물 속에서 구르고 구른 돌입니다. 오랜 시간 물 속에서 침식작용을 거쳤기에 시간이 지나도 변형이 적습니다. 반면 산돌은 침식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았기에 무덤 속에서도 침식 작용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결국 태왕릉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삶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유는, 언어를 정밀하게 세련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듬고, 또 깎아서, 내가 정말 원하는 언어의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 맞습니다. 강돌은 흐르는 강물 속에서 구르고 구르며 점점 둥글어지고 단단해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말도 강돌처럼 되어야 합니다.


정지아 작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는 빨치산 출신이었던 아버지의 죽음 후에 아버지를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을 애틋하게 그린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에게 아버지는 사회주의 사상을 고집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에 비친 아버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사상보다 삶을, 사상보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죽음 이후에야 마침내 이해하게 된 아버지의 영단에, 웃음 안은 눈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바칩니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언어는 시간에 깎여갑니다. 개인의 아픔이, 시대의 시련이, 세월의 흐름이 우리를 깎고 또 깎아 냅니다. 이렇게 시간에 깎인 어른의 말은 강돌처럼 둥글고 단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시간의 흐름이 우리의 말을 더 뾰족하고 날카롭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말을 강돌과 같이 둥글고 단단하게 다듬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돌과 돌이 부딪치면 오히려 모가 나고 날카로워집니다. 단단해지기는커녕 깨져버리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물속에서 구르고 깎여나간 돌은 둥글둥글합니다. 물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버린 돌은 시간이 갈수록 단단해져 갑니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물과 같은 말입니다. ‘니가 왜 그런지는 난 잘 모르겠어. 그런데 오죽하면 니가 그렇게 했을까? 그래 니한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수용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아픔, 원망, 분노를 흘려보냅니다. 마치 강돌이 물을 흘려보내듯이요.


개인의 아픔이, 시대의 시련이, 세월의 흐름이, 나를 낡고 가시 돋게 하는 것이 아니라 둥글고 단단하게 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랬구나.” “오죽하면 그랬을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이해가 어렵다면, 인정과 수용의 언어로 나의 삶을 둥글게 깎아갑니다.


내게 아픔은 사포와 같아서, 너는 닳고 쓸모 없어지지만 나는 더욱 빛나게 됩니다. 아픔 속에서, 세상의 맞바람 속에서, 오히려 나의 언어를 정밀해지고, 나의 삶은 단단해집니다. 예,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4음절 정리>


태왕릉은 와르르르

장군총은 우뚝우뚝

둘다오래 되었는데

그이유가 궁금하네


장군총엔 강돌넣고

태왕릉엔 산돌넣네

물속에서 구르면서

동그랗고 단단해진

강돌세월 견뎠지만

그런과정 겪지않은

산돌세월 못견뎠네


나이들어 힘든것은

말다듬기 안한까닭

정밀하고 세련되게

말다듬기 못한까닭

우리말을 강돌처럼

만들려면 어찌하나

개인아픔 시대시련

세월흐름 겪으면서

나의말을 강돌처럼

만들려면 어찌하나


아픈일을 겪었을때

부딪치면 뽀죡해져

물과같이 부드럽게

흘려내야 동글어져


오죽허면 그러겄냐

이런말은 어떠한가

그럴만한 너의이유

있을테니 그랬겠지

비록이해 안되어도

인정수용 가능하니

물과같은 말에실어

나의빡침 흘려내니


아픔고난 속에서도

사포처럼 작용해서

나의언어 세련되고

동그랗게 해준다네

이렇코롬 연습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니

나는매일 모든면이 

점점좋아 지고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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