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로 속임수를 쓸 때,
그 논리에 속을 사람은
자신 이외에는 없다.
- 비트겐슈타인
뇌과학은 한 사람이 하루 평균 6천 번 가량의 생각을 한다고 추정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나 많은 생각을 하겠어?'라며 의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명상을 해보면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쉬지 않고 일어나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뇌과학이 좀 더 발달하면, ‘오만 가지 생각이 일어난다’는 말이 사실이었음을 알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로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하려고 하면 방법이 보이고, 하지 않으려고 하면 변명이 보인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뇌는 필요에 따라 어떤 이유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고 싶으면 해야 할 이유와 방법이 떠오르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야 할 수많은 이유가 떠오릅니다.
생각이란 녀석은 참 묘한 것이, 생각은 우리의 욕망을 부추기는 엑셀의 역할도 하지만. 욕망을 절제하는 브레이크의 역할도 합니다.
생각이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욕망을 제어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기로 한 것은 하기 싫어도 해 나가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고 싶어도 참을 수 있습니다.
생각의 뿌리가 얕아 물에 뜬 부표처럼 욕망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면, 욕망을 합리화하는 수많은 이유와 근거를 만들어 냅니다. 하고 싶으면 해야 할 이유를, 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 욕망을 합리화하고 부채질합니다.
그래서 폴 부르제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내 생각을 단단히 붙잡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욕망에 따라 살아지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법륜스님의 유튜브 영상에 나온 이야기 하나 소개합니다.
서울에 사는 어떤 사람이 설악산이 좋다고 해서 설악산 구경을 갔어요. 버스를 타고 설악산에 도착해 산을 오르는데 길 아래 가파른 곳에 예쁜 꽃이 하나 피어 있는 거예요.
꽃이 너무 예뻐, 꽃을 꺾으려고 배낭을 벗어놓고 살살 기어 내려갔어요. 그런데 그만 미끄러져 옷이고 손이고 다 엉망이 됐어요.
그래서 씻으려고 아래 계곡으로 내려갔는데 날이 가물어서 물이 별로 없었어요. 손을 씻기 위해 돌을 들어내고 웅덩이를 파는데, 가재가 바글바글한 거예요. 얼마나 잘 됐어요? 한참을 가재를 잡으니 가재가 한 바가지가 됐어요.
가재를 먹으려고 보니 된장, 고추장, 이런 게 필요해서 그 밑에 마을로 내려갔어요. 된장, 고추장을 얻어서 밥을 해 먹는데, 자동차가 하나 나가는 거예요.
그 차가 마침 서울로 가는데 자리가 하나 비었어요. 그래서 생각하니까, 주말이라 표도 구하기 어려운데 공짜로 서울로 간다니까 웬 떡인가 싶어 덜컥 그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어요.
순간순간은 잘했는데 결론은 거꾸로 됐어요. 산에는 안 가고 서울로 왔어요.
이것이 인생입니다. 이것이 인생이에요.
우리는 순간순간 욕망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생각은 이런 욕망을 합리화합니다. 자기 합리화는 아주 은밀하고 교묘해서 스스로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설악산을 가려고 출발했던 사람이 설악산 구경도 못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지만, 공짜 차를 타고 와서 잘 됐다고 좋아합니다.
문득 뭔가 이상한 느낌이 스쳐 지나가지만 뭐가 이상한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야 아차 싶고 후회가 됩니다. 설악산 구경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네 인생이 이렇습니다.
법륜스님은 이 또한 하나의 인생이라고,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대신 이렇게 살려면 설악산을 가겠다던 첫 생각을 내려놓으면 된다고 합니다. 첫 생각을 내려놓으면 후회할 일은 없습니다. 꼭 설악산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만일 설악산에 가겠다는 첫 생각을 지키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차에서 내려야 합니다. 욕망을 합리화하는 생각을 멈추고 첫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후회하지 않도록,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다면, 먼저 생각을 분명하게 합니다. 분명하게 가다듬은 첫 생각을 ‘초심’이라고 합니다.
초심을 나침반 삼아 나아가고, 초심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초심에 비춰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살필 때,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습니다.
대학생 때 겪은 일이었습니다.
과실에 친구들 예닐곱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어가니 평소처럼 친구 한 녀석이 술 마실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딱 한 잔만 할까?”
은근한 목소리로 한 친구에게 말합니다.
평소라면 그러자고 대답했을 친구가 버럭 화를 냅니다.
“맨날 딱 한 잔만 하자고 해놓고, 언제 딱 한 잔만 한 적이 있냐? 그놈의 딱 한 잔 정말 지긋지긋하다.”
순간 과실에 침묵이 내려앉았습니다. 친구의 말이 사실이라 아무도 반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침묵을 깨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진짜 딱 한 잔만 해볼까?”
“오! 좋은데.”
“그래 딱 한 잔만 하자.”
“그래 오늘은 진짜 딱 한 잔만 하는 거야.”
모두 눈빛을 반짝이며 흥분했습니다.
모두 우르르 학교 앞 단골 호프집에 갔습니다.
“이모, 우리 오늘은 딱 한 잔만 하기로 했어요. 맥주 500 한 잔씩 주시고요, 안주는 필요 없어요.’
모두들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선 채로 맥주를 받아들고 파도타기로 쭉 원샷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호프집을 나왔습니다.
날은 여전히 밝았고, 모두들 취기 하나 없이 멀쩡했습니다. 그리고 딱 한 잔의 약속을 지킨 우리들 스스로가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이제 집으로만 가면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이거 정말 재밌네. 딱 한 번만 더 해볼까?”
딱 한 잔 성공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던 우리들에게는 헤어날 수 없는 유혹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또 다른 호프집에 들어갔고,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지도 않고 딱 한 잔을 원샷하고 그 집을 나왔습니다.
그날 그런 식으로 우리는 술집 일곱 군데를 들렀고, 결국 학교에서 밤을 새워 술을 마셨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들끼리 했던 농담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잔은? 딱 한 잔.’
생각이 이처럼 교묘함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나에게 말을 건넵니다.
나는 첫 마음을 지키며 삽니다. 나는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삽니다.
나의 내 생각이 얼마나 교묘하게 움직이는지 잘 알기에, 자주 첫 마음에 지금의 나를 비춰봅니다.
자주 말하고 생각함으로써 나의 첫 마음은 깊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립니다.
나의 생각이 배의 닻처럼 단단하게 뿌리내린 덕분에, 욕망의 파도에서 이리저리 출렁거리더라도 금세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첫 마음을 지키는 언어를 품어봅니다.
‘하기로 한 것은 그냥 합니다.’
하루에도 수천가지
생각하는 우리의뇌
우리뇌는 필요하면
모든이유 만든다네
하려하면 방법짜잔
안하려면 변명짜잔
우리생각 묘한것이
우리욕망 부추기고
우리욕망 절제하는
두개역할 모두하니
생각대로 살지않음
사는대로 생각하네
욕망따라 합리화를
하지않고 지내려면
순간순간 나의모습
첫마음에 비춰봐야
하기로한 것들일랑
변명없이 그냥함다
이말품고 지켜가니
첫마음이 깊어지고
첫마음이 깊어지니
삶의중심 잡아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