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말에는
음악이 깃들어 있다.
- 비트겐슈타인
아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운전을 하다가 접촉 사고가 났다고. 신호가 바뀌어 정차하는데 뒤따라오던 차가 아내의 차를 들이받았다고. 다행히 아내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차도 뒷범퍼만 경미하게 부서졌다고. 보험사에 연락해 뒤처리를 마무리 지었다고.
아내를 위로해 준 뒤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나름 부드러운 말투로요.
“좋은 계기인 것 같아. 당신 운전이 좀 거칠어서 늘 불안했거든. 이 일을 계기로 운전을 좀 조심해서 하면 좋을 것 같아.”
아내는 이 말이 무척 억울하고 서운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평소에 운전을 그렇게 거칠게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아무 잘못한 것 없이 일어난 사고인데, 마치 제가 아내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고 느껴졌다고 합니다.
제가 한 말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말의 내용과 말투는 크게 문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말을 한 타이밍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차 사고가 나서 놀라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비록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사고를 냈다는 마음에 불안한 상황에서 놀란 마음을 위로받고자 전화를 했는데, 남편이 ‘운전을 좀 조심해서 하라’라고 이야기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서운했을까요?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말에는 음악이 깃들어 있다.’라고 말합니다.
노래를 아름답게 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지, 우리의 말이 음악처럼 아름다워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음정과 박자가 정확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래가 주변 상황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정이 깃들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룰 때, 한 곡의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에 아름답게 깃들게 됩니다.
우리의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합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황에 어울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에 감정이 깃들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 우리의 말은 한 곡의 아름다운 노래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했던 말에는 일말의 사실은 담겨 있을지언정, 타이밍도 적절하지 않았고 아내가 처한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듣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이 드는 불협화음과도 같은 말이 되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차 수리도 다 끝나고 아내의 몸도 후유증이 없는지 충분히 살펴본 뒤
“잘 마무리되어서 다행이야. 당신도 크게 다친 데도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이번 계기로 좀 더 운전을 조심해서 하는 기회로 삼으면 전화위복이 되지 않을까 …..”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사실을 말하되 때와 장소를 가려서 말할 수 있도록, 피아노 연주자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듯, 우리의 말을 부지런히 다듬어 마침내 상대의 말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감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노래와 말에 감정이 깃든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음정, 박자, 상황, 이 모든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보다 보면 가끔 이런 식의 심사평을 듣게 됩니다.
“000씨는 음정 박자도 실수가 있었고, 테크닉도 부족해요. 그런데 노래에 담긴 감정이 그 모든 걸 덮어줘요. 하~ 어떻게 노래를 그렇게 부를 수가 있죠? 가슴이 먹먹해지는 노래였습니다. 저는 잘 들었습니다.”
음정과 박자가 다소 틀리더라도, 썩 좋은 목소리가 아닐지라도, 노래가 묘하게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때가 있습니다.
노래 부르는 사람의 숨소리, 작은 몸짓 하나에 마음이 출렁입니다. 부르는 이의 삶이 노래에 짙게 배어 귀가 아닌 가슴으로 노래가 다가옵니다.
이는 기술과는 다른 영역입니다. 삶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숨길 수도 더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살아온 만큼 전해질 뿐입니다.
큰고모 90세 생일잔치 때였습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 얽혀 고모는 몇 달 전 요양원에 들어갔습니다. 요양원에 들어가기 싫다며 버티는 고모도, 고모를 요양원으로 보낼 수밖에는 가족도 모두 마음에 멍이 들었습니다.
90세 생일만큼은 집에서 치르고자 요양원에 양해를 구해 집으로 하루 모시고 왔습니다. 고모의 형제, 가까운 조카 등 편안하고 친근한 사람들만 초대했습니다.
어쩌면 생전에 마지막에 보는 자리일 수도 있겠다 싶어 멀리서도 마다않고 찾아온 자리였습니다. 생일 케잌에 촛불을 끄고 저마다 고모에게 축하의 말을 건넬 때였습니다.
큰고모와 20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막내 고모가 활짝 웃으며 고모에게 말했습니다.
“응가(언니의 사투리), 오늘 생일 밥 많이 먹고 기운 내서 오늘 밤에 편안하게 돌아가세요.”
막내 고모의 말에 큰 고모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큰고모가 힘든 몸으로 애써 지하주차장까지 배웅 나왔습니다. 차가 출발하고 큰고모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차 안에서 막내 고모가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우리 응가, 이제 언제 또 보겠노….”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요양원에 돌아가기는 싫고,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 이제는 그 상황을 체념하며 받아들인 큰고모. 그런 언니가 못내 안타까운 막내 고모.
헤어지자마자 펑펑 흘릴 눈물을 참고 웃으며 건넨 한마디. “오늘 밤에 편안하게 돌아가세요.” 피붙이만이 건넬 수 있는 위로와 축하의 말이었습니다.
말에 감정이 깃든다는 것은 말을 잘한다는 것과는 다른 영역입니다. 말에는 살아온 삶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숨길 수도 더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살아온 만큼의 삶이 담깁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을 누가 감히 위로할 수 있을까요? 끝을 헤아리기 힘든 막막함 아픔 앞에서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미 같은 아픔을 겪으며 눈물로 가슴을 채웠던 이가 있다면, 그이가 손을 꼭 잡으며 “아이고….”라는 단 한 마디의 말을 건네더라도, 그 한 마디만큼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같은 말이라도 다른 힘을 가지는 이유는 살아온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말에 담긴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뻐하고, 아파하는 우리의 모든 삶의 이야기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과 말에 녹아서 누군가에게로 흘러들어갑니다. 기쁨은 긍정의 힘을, 아픔은 위로의 힘을 전해줍니다.
나의 진실을 담을 수 있기를, 적절한 때에 말할 수 있기를, 상황에 어울리는 말을 할 수 있기를.
살아온 삶이 말에 녹아들어 누군가에게는 힘과 위로가 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의 말이 아름다운 음악으로 울려 퍼지기를 깊이 소망합니다.
우리말이 음악처럼
아름답게 되려면은
음정박자 갖추듯이
사실대로 말을하고
때와장소 고려해서
적절하게 말을하면
상대말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화음되네
이모든것 중하지만
말에감정 담는것은
이모든것 뛰어넘는
완전다른 차원일세
살아가며 느낀감정
사라지지 않는다네
우리삶에 녹아들어
우리말에 담긴다네
나의기쁨 녹아들어
긍정의힘 전해주고
나의아픔 녹아들어
위로의맘 전해주네
나의삶이 나의말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타인에게 흘러가서
고스란히 전해지니
나의삶을 다듬어서
말의힘을 키워가면
우리말이 음악처럼
아름답게 빛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