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의심은
믿음 이후에 온다.
비트겐슈타인
한 학생이 기억에 납니다. 수업 태도가 무척 좋아서 모든 선생님이 칭찬하는 아이였습니다.
“태인아, 샘들이 너를 참 많이 칭찬하더라. 어떻게 그렇게 수업을 잘 듣는지, 혹시 비결이 있어?”
어쩜 저렇게 수업 태도가 좋을까 싶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잠시 눈을 감고 ‘선생님 감사합니다.’를 3번 마음속으로 말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거든요.”
잠시 생각하더니 아이가 말했습니다.
“매 수업 시간마다?”
“예.”
“싫어하는 과목이나 싫어하는 선생님 시간에도?”
“예, 그렇게 하고 나면 한결 수업에 집중이 잘 되더라고요.”
가뭄 중에 하늘에서 반가운 비가 내립니다. 사람들이 기뻐하며 너도 나도 그릇을 들고 나가 빗물을 받습니다.
큰 그릇을 든 사람은 많이 받고, 작은 그릇을 든 사람은 작게 받습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그릇 크기만큼 빗물을 받습니다.
그런데 물을 한 방울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그릇을 거꾸로 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릇을 거꾸로 들고 있으면 아무리 큰 그릇을 들고 있어도 한 방울의 물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의심은 믿음 이후에’ 옵니다. 공을 받지 않고서 던질 수는 없습니다. 일단 공을 먼저 받아야 다시 던질지 계속 가지고 있을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법륜스님은 즉문즉설에서 상대의 말에 일단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행동은 자신의 뜻대로 선택해서 하라고 하십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이해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예 알겠습니다.’가 상대의 말대로 내가 따르겠다는 ‘동의’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내가 듣고 이해했다는 ‘수용’의 의미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학급 행사를 새롭게 기획해서 교장선생님께 허락을 받으러 갔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난색을 표하면서 좀 더 생각해보자고 하셨습니다. 방긋 웃으며 “예 알겠습니다.” 하고 돌아갔습니다.
일주일 뒤 다시 교장실에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는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방긋 웃으며 “예 알겠습니다.” 하고 돌아갔습니다.
다시 일주일 뒤 교장실에 찾아갔습니다.
“교장선생님 생각이 혹시 바뀌셨나 해서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웃으며 말하니 화를 내지는 못하고 아무래도 어렵겠다고 말씀하셔서, 다시 방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교장선생님, 딱 2번만 더 올게요. 혹시 교장선생님 생각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5번째 방문에서 허락을 받았습니다. (허락을 못 받아도 방긋 웃으며 예하고 하려고 마음먹고 가긴 했습니다.)
이 경우는 원하는 대로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뜻대로 되든 뜻대로 되지 않든, “예 알겠습니다.” 하고 웃으면서 마무리하면 모두 해피엔딩입니다.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되, 그 말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알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의견을 말할 자유가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자유를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당신을 존중하기에 당신의 말에 귀 기울입니다.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신호로 나는 말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당신의 자유를 존중하듯 나 스스로를 존중합니다. 나에게도 나의 생각에 따라 말하고 행동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선택에 따라 행동합니다.
수업 시간에 눈을 감고 ‘선생님 감사합니다’를 말하던 아이처럼, 내게 주어진 것은 방긋 웃으며 “예 알겠습니다.” 하고 일단 받아들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그릇을 바로 들고 비를 받습니다. 받은 빗물로 무엇을 할지는 나의 선택입니다. 차를 끓여 마시든, 빨래를 하든.
이런 태도를 김종원 작가는 ‘세상의 모든 빛나는 것을 찾으려면, 먼저 눈에 보이는 것들에게 빛을 허락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법륜스님은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 위에 비판의식이 있으면 혁신(革新)을 가져오지만, 부정적 시각 위에 비판적 의식을 갖게 되면 파괴적 에너지가 나옵니다.’라고 말합니다.
먼저 받아들이고 그다음에 의문을 품습니다.
그렇게 나는 깊어집니다.
공을먼저 받아야만
던져줄수 있는듯이
상대의말 들어야만
나의얘기 할수있고
이세상을 수용해야
변화또한 가능하네
하늘에서 비가와도
그릇엎곤 물못받고
빛나는것 찾으려면
내눈에빛 켜야하네
예알겠음 이한마디
상대존중 하는말야
상대의뜻 수용하고
상대존중 하는말야
상대의뜻 수용함은
동의와는 다르기에
상대자유 존중하듯
나의자유 존중하여
예알겠음 말을하곤
내뜻대로 행동하네
내마음을 먼저열고
상대의뜻 수용하는
긍정바탕 그위에서
나의생각 펼쳐가니
이세상이 내품에서
아름답게 변화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