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의자포U Nov 12. 2024

32. 언어는 절망의 골짜기에 피어난 꽃입니다


정답은 다른 곳에 숨어 있는 게 아니다.

상대가 정답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내놓으면, 그게 답이다.

- 비트겐슈타인



#이야기 1


모든 군인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유격 훈련. 2박 3일 유격 훈련을 받을 때였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보를 할 때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PT 체조를 할 때면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PT 8번! 100번 더!” 이 말을 들을 때의 심정이란. 이러다 죽겠구나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릅니다.


길고 길었던 유격 첫날이 끝나고 밤에 몇 명이 작은 텐트에 누웠습니다. 다들 널브러져 오직 한 가지 이야기만 했습니다. “제발,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


제가 왜 그랬을까요? 불현듯 군복 바지 옆에 달린 큼직한 건빵 주머니에서 시집을 꺼내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잠시라도 유격을 잊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시 낭송에 귀 기울이던 사람들이 한 문장에 이르러 동시에 깊은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아픔은 죽음의 삶이다.' 


목이 타들어가는 여름날 살얼음이 낀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을 마신 기분 같았달까요. 그 한 문장이 피부로 스며드는 느낌이었습니다.


평생 시와는 담을 쌓고 지냈던 한 고참이 “그래 아픔은 죽음의 삶이다! 씨발 죽어보자!” 하고 외치자 서로 낄낄대며 웃으며 잠이 들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이야기 2


얼굴과 손에 자글자글한 깊은 주름, 완벽한 기역자로 꺾인 허리, 땅을 스치듯 질질 끌리는 다리. 가난과 고난의 시절을 통과했던 우리네 할머니들의 삶이 생각납니다. 


한 겨울 꽁꽁 언 개울가의 얼음을 깨고 얼음을 깨고 맨손으로 12명 대식구의 빨래를 해댔던 젊은 날의 시간이 떠오를 때면 몸서리치며 말합니다. 


“그 세월들을 어떻게 보냈나 몰라.”


그리고 한숨 쉬듯 덧붙입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그렇게 말하면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합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아픔과 절망의 바닥을 디딘 사람들에게는 단단한 힘이 있습니다.


유격을 마치고 나면 “그 유격도 버텼는데” 하며 군 생활이 한결 편안해지고, 힘겨운 시절을 겪고 나면 “그 시절도 견뎠는데” 하며 삶이 한결 견딜 만해집니다.


이렇게 깊은 아픔이 오히려 세상을 살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삶이라는 것이 원래 아프고 힘겨운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오히려 세상이 견딜 만해집니다. 


저 깊은 절망 속에서는 살아남은 것만으로 희망이 됩니다. 그래서 희망은 절망의 골짜기에서 피어난 꽃입니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절망적입니다. 언어로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이라는 한 단어에 담기에 하늘은 너무도 넓고, ‘꽃’이라는 한 단어에 담기에 꽃은 너무도 다채롭습니다. 언어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담기에 한없이 부족합니다.


또 나의 언어가 상대에게 온전히 전달되고, 상대의 언어를 내가 온전히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나의 언어에 담긴 기억과 감정이 상대의 그것과 같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다’란 단어가 나에게는 넓게 펼쳐진 가능성의 공간이라면, 상대에게는 폭풍우치는 두려움의 공간일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언어에 세상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도, 언어로 생각과 감정을 온전히 전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언어는 기본적으로 절망적입니다. 



삶의 절망을 겪고 나면 오히려 삶은 살만한 것이 되듯, 언어의 절망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언어는 더 소중해집니다.


‘삶이 왜 이래?’라고 한숨 쉬는 대신에 ‘산다는 게 다 이런 거지.’라고 받아들이면, ‘오! 이런 날도 있구나.’하며 기뻐할 일들이 종종 생겨납니다.


‘어떻게 내 말을 오해할 수 있어?’라고 원망하는 대신에 ‘그래, 내 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라고 받아들이게 되면, ‘오, 내 말을 이렇게 잘 이해하다니!’하며 놀라워할 일이 종종 생겨납니다. 


오해가 서운한 것이 아니라 이해가 신비로운 것입니다. 오해는 당연한 것이고 이해가 기적입니다.


‘상대가 내 마음을 몰라주는 이유는, 마음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언어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꽃이라고 말했다고 그에게 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 꽃이 될지, 가시가 될지는 그의 몫입니다.


내가 정답을 말한다고 그에게 정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정답으로 받아들여야만 그에게 정답이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말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 말을 다듬어 가는 것입니다. 상대의 언어에 더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나의 언어가 세상을 담을 수 있도록, 상대의 언어와 만날 수 있도록 치열하게 다듬어 가면 좋겠습니다.


절망의 골짜기에 핀 꽃 이 아름다운 꽃을 잘 가꿔가면 좋겠습니다.



<4음절 정리>


그유격도 버텼는데

군생활이 뭔문제고

힘든시절 견뎠는데

무슨일을 못할쏘냐

산다는게 원래부터

아프고도 힘겨운것

이사실을 인정하면

세상살이 할만하네


언어로는 이세상을

사실대로 담지못해

언어로는 나의생각

상대에게 전달못해

언어로는 상대생각

내온전히 이해못해

나의언어 본래부터

절망적인 것이라네


오해당연 이해기적

언어한계 인정하면

나의말을 가다듬고

상대언어 귀기울여

나의언어 깊어져서

나의삶이 꽃피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