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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폴리피자 Jun 04. 2023

음식은 정성이다

손이 많이 간다. 바쁘다 바빠.

해도 해도 늘지 않는 기술이 있다.


나에겐 그것이 요리다.


나는 어려서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보지 못했다.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라, 그냥 집에 있는 집 밥을 먹었다. 


일터에서 돌아오신 부모님은 쉬셔야 했다. 어머니는 요리를 잘하시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맛집을 가보지도 못했다. 음식이나 외식에 남다른 흥미를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요리하는 것을 취미로 즐기지도 않는다. 


내가 퇴사를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 발령 난 곳이 요리를 해서 상품을 출시하는 부서였다. 나는 업무에 어려움을 느꼈다.


레시피를 짠다거나, 직접 조리해서 테스트해본다거나 어디 하나 즐겁지 않았다.


발령 당시 나는 조리학과 출신도 아니고 이 쪽 분야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인사팀에 강하게 말했지만 


내 말은 씹혔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 반항아가 되었고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 어린 마음에 까라면 까라는 회사에 적응할 생각 보단 그냥 삐졌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생활의 모든 업무는 효율적으로 쳐냈다. 칼퇴만 꿈꾸고 퇴사만 꿈꿨으니 당연히 직장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요리는 사실 극복할 수 있는 별거 아닌 것이다. 지나고 보니 내 마음의 장벽을 스스로 쳐 놓은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내 앞사람 옆사람과의 경쟁이다. 요리사니 조리학과니 나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것을 극복할 의지도 부족했다. 이런 자세는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


당장 내 눈앞에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려움이 있다면 방법을 찾아다가 한 단계 넘어서야 성장한다.


돌이켜 보니 별거 아닌 거에 나는 뜨뜻미지근하게 대응했다. 더 심도 있게 파고들어야 하는데, 아주 효율적으로 쳐내기식으로 일했다.


회사는 다 안다, 누가 일을 열심히 하고 대충 하는지. 매일같이 모니터링하고 어딘가에 기록을 한다.


여전히 요리는 부담스럽다.


특히 계란말이는 정말 모양 잡기가 해도 해도 잘 안 는다.


계란말이에 맛을 더하려고 온갖 야채를 다듬고 잘게 잘라 넣기도 하지만, 손이 너무 많이 간다. 


내 인생 천금 같은 시간이 이렇게 흐르는 게 그냥 안타깝다.


반찬 가게에서 사 먹잖니, 은근히 비싸다. 


결론은 내가 요리 실력을 레벨업 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라도 신경을 더 쓰고 뭔가 더 많이 넣고 하면 자연스레 맛은 올라가지만,


이렇게 매번 정성 들이자니 내 에너지가 무한대도 아니다.


건강 생각해서 야채를 주문해도 씻느라 손이 많이 간다.


그래서 어쩌다 길 가다 붐비는 식당을 보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퇴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요식업이다.


요식업은 대기업이 건들지 않는다. 건들지 못한다. 가게마다 개성이 있고, 맛이 다른지라 정형화된 매뉴얼을 따르는 그런 대기업의 약점을 파고들 수 있다.


어쩌다 커피숍에서 일하는 직원의 모습만 봐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저기 주방에 있는 식기구들 다 세척도 해야 한다. 매장도 정리 정돈해야 한다. 간단한 조리도 해야 하고 손님도 맞이해야 한다. 그 정신없는 상황을 매일 같이 해야 하는데 너무 대단하다.


해보고 논해야 하는데, 지레 겁을 먹는다.


어떻게 하면 매 끼니 식사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돈이면 다 되겠지? 기승전 돈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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