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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6년 차, 육아 3년 차

그럭저럭 즐겁게 산다

by 나폴리피자

2020년 3월에 퇴사했다.


퇴사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나는 복합적이었다.


직무불만족, 승진누락, 팀장과 갈등 그리고 잦은 신경성 두통까지 늘 퇴사를 외쳤더니 그렇게 퇴사할 상황이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며 회사를 오 갈 생각에 숨이 턱턱 막혔다.


"이제 그만하자, 퇴사하자."


퇴사를 공식적으로 이야기했던 날이 잠시 떠오른다.


나는 회사를 일찍 가곤 했다. 불 꺼진 사무실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하루를 시작하는 그 느낌이 좋았다.


사무실 자리에 와서 짐을 내려놓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하나 사서 사내 도서관에서 잠깐 책을 읽곤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맑은 정신으로 책을 잠깐 읽으면 집중이 잘 되고 글 내용이 잘 이해가 됐다.


퇴사를 결심하고 이야기를 꺼내기로 결심한 그날은 도서관이 아닌 사무실 의자에 앉아 팀장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팀장이 출근했고, 나는 인사를 했으며 팀장이 자리에 앉는 순간 드릴 말씀이 있다며 진중하게 입 밖으로 퇴사를 하겠다고 말을 꺼냈다.


팀장은 당황했고, 가족과 충분히 상의는 했느냐, 혹시나 충동적인 발언이라면 잠깐 더 생각을 해봐라, 일단 위에 보고는 안 할 테니 더 고민해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다시 말했다.


그렇게 정식으로 통보를 했고, 사무실에선 코로나가 확산되니 마니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나의 퇴사는 그렇게 흥미로운 주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 갑작스레 재택근무가 시행이 됐고 나는 팀원들과 퇴사 회식을 할 틈도 없이 그렇게 작별했다.


그저 그런 무의미한 카톡과 메신저, 문자 정도 주고받았고 아무런 영양가도 없었다.


특히 전 팀에서 같이 근무했던 직장상사, 팀원이 뜬금없이 전화를 했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그저 나의 퇴사 이후 진로가 궁금해서 그런 가십거리 소재로로 활용되기 싫었다.


"굿바이 회사, 즐거웠다 8년"


그리고 6년이 흘렀다.


전업투자라는 새로운 분야를 알게 돼서 공부하고 배우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돈을 벌기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 중이다.


책을 꾸준히 읽으려고 항상 책상에 두고 꺼내보기도 한다. 브런치에 이렇게 글도 쓴다.


산책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동네 개천이나 숲으로 가서 한두 시간씩 걷기도 했다.


코로나로 잠시 쉰 헬스를 다시 했고, 운동중독에 빠졌었던 그때 열정이 다시 살아나기도 했다.


퇴사하고 지금까지 일기를 손으로 쓰고 있고, 작년에 요가를 배우게 되어 지금까지 요가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27개월 된 아기를 키우며 육아의 즐거움도 맛보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뭐 하는 사람이냐 묻는다면, 나는 육아와 살림하는 애아빠라고 말하고 싶다.


육아는 할수록 익숙해지고 요령도 생긴다. 그리고 보람도 느끼고 아이와 소통하는 기분을 느끼면 즐겁다.


퇴사 전에는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그저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


자연스레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만나는 사람도 없지만, 처음엔 두렵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별거 아님을 알게 되고 오히려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적막함과 고독이 더 좋다.


혼자서 글을 쓰거나 글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차창 밖 풍경을 보며 잠시 과거의 생각에 머물거나 무엇을 해도 내면에는 즐거움이 피어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내 삶이 복잡하고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다면 지금은 너무나 단순하고 가볍고 정신이 맑아진 기분이 든다.


그래서 고독을 즐기고 있고 이 또한 나와 그럭저럭 잘 맞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직장생활이라는 이름 아래 혹은 사회생활이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나 스스로를 눌렀어야 했고 적당히 타협했어야 했고 억지로 웃거나 마음에 없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다.


누군가에게 나를 내세워 의식할 상황이 없으니 이보다 행복할 수가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무리 지어 사는 본성을 갖고 있다느니 당장이라도 어떤 무리에 들거나 인간관계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지만 내가 잘 못하는 분야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렇게 인정하니 마음도 편하고 그럴수록 오히려 나에게 더 집중하게 된다.


직장 내 인싸가 되어 매일 같이 술 모임과 약속이 끊이지 않는 동료나 친구를 보면 참 부러웠다. 그리고 새삼 대단해 보였다. 나라면 진작에 지쳤을 텐데 그 지치지 않는 태도가 놀라웠다.


나도 저렇게 해야 좀 더 인정을 받거나 조직 내에서 더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설득해보려고 했으나 거기에 힘쓰지 않기로 결심했고 나는 내 방식대로 살자고 다짐했었다.


잦은 회식도 다 거부했었고, 심지어 동기모임도 안 나가고 나는 그저 혼자 헬스장에서 땀 흘려 운동했던 순간이 기억이 난다.


모두가 불금을 외치며 회사를 빠르게 빠져나갈 때, 나는 회사 헬스장에서 불금을 보내곤 했다.


그게 익숙해서 그런가 아니면 거기서 엄청난 희열을 느낀 것일까 나는 어떤 루틴을 깨는 게 너무나 싫었다.


그리고 헬스에서 체득한 루틴의 힘으로 퇴사 후 지금까지 6년간 루틴을 지키며 살고 있다.


나와 약속한 루틴이지만, 누군가 보기엔 그저 고독해 보이는 고립된 아재로 보일 수도 있겠다.


지금처럼만 루틴을 즐긴다면 마음속에 그리던 부자의 모습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란 느낌이 요즘 계속 든다.


무너졌던 나 자신을 세우고 건강을 회복하고 목표를 향해 계속 반복하는 정신으로 시간을 잘 녹인다면 자연스레 나는 그곳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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