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자존감은 밖에서도 쑥쑥 자란다.
요즘 서점을 가면 사람과 사람사이, 관계에 관련된 책들이 많다.
그리고 '우리'를 위로하느 책들이 많다.
자존감은 내 스스로도 만들지만, 주변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내 주변에도 있다.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의도하지 않았을테지만
사람들도 많지만 내 자존감을 쑥쑥 키워주는 자존감 요정들도 있다!
나는 후천적 자존감이 높아진 사람이다.
내가 성장기에 있던 시대에는 자존감이란 단어도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과도기였던 시대에서 성장했다.
나라는 개인의 삶에 집중하던 시대도 아니었다.
가족중시와 개인주의 그 정립되지 않은 중간에서 자라온 우리는 지금 어른이 되서 경제인구로 접어들었고,
우리가 지켜본 나보다 가족이 우선이었던 부모와 다르게
개인의 행복, 만족도 중요하다고 외치면서 투쟁하며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러 환경, 여러 이벤트들이 다양하게 이루면서 성장했고,
그러다보니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만들어졌고, 그들과 관계를 이루면서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상처주고 상처 받았다.
나는 후천적 자존감이 높아진 사람이다.
나를 돌아볼 이유도 없었고, (누가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으니)
나라는 사람이 어떤지도 잘 몰랐다.(내 맘을 돌아볼 필요도 못느꼈따.)
하지만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기에 점점 성장하면서,
하고싶은게 생겼고,
어른이 되면서 이성과 이상이 다르다는걸 알았고,
좌절도 있고 쓰러지기도 하고 다시 달려가기도 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기도 하고 다시 길을 잃기도 했다.
난 여전히 삼십춘기인 겉은 어른이나 속은 어린이와 어른 중간에 있다.
자존감이 높고 나를 사랑하지만 때론 흔들린다.
다행이 나의 자존감은 탄성이 있는 아이여서
흔들려도 다시 튕겨져 올라와 으쌰으쌰하게 된다.
나에게 다시 이렇게 올라올 수 있는 요소는 다양하지만 오늘은 그 중에 내 주변에 있는 자존감 요정들에 대해 쓰려고 한다.
며칠 전에 좀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생각을 해봤다. 왜 힘든건지.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도 있었지만 주변에 내 감정을 갉아먹는 사람들과 너무 가까이 지내던것도 큰 요인이었다.
분명 친하고 친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분명 내 자존감을 갉고 있었다.
그러다 분명 내 주변에 만나면 즐거운,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외국에서 만난 소중한 친구들도 계속 연락하며
내게 자존감을 쑥쑥 키워준다.
그러다보면 나도 잠시 잊고 있던 나의 사랑과 내 대단함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자존감 요정이 되고자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고 하지 않았던가
좋은 말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리고 나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내 감정을 갉아먹지 않을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더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