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차
요즘 동시랑 썸 타는 중이었다. 도저히 감이 안 오던 동시였는데 동시 모임 5회 만에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이제 썸에서 사랑으로 바뀌는 중이다. 자꾸만 생각난다. 자꾸만 읽고 따라 쓰고 싶다. 궁금하고 더 알고 싶은 마음. 그건 사랑이다. 그림책과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처럼 설렌다.
어떻게 쓰는지 아직 모르지만 그냥 쓰고 싶어서 몇 개 써봤다. 동시, 너에게 다가가는 중이다. 언제나 시작할 때가 가장 설레고 잘 모를 때가 가장 행복한 법이다.
- 조은주-
공원 앞 짧은 신호등에 서면
악마와 천사가 내게 속삭인다
그냥 건너, 아니야 기다려
신호등에 빨간 사람이 지키고 섰는데
맞은편 아저씨가 내쪽으로 건너온다
내가 부른 건 아니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니
우리나라에는 신호 안 지키는 사람이 많아
그런다
아저씨는 투명인간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다
- 조은주-
나는 엄마의 피와 살로 만들어졌대요
꼭 붙어서 걸으면 다시 하나가 된 기분이 들어요
엄마랑 어깨동무하고 싶은데
지금은 손끝으로 겨우 엄마 목을 잡아요
엄마가 멱살 잡지 말래요
엄마가 몸을 낮춰주는 것도
내가 의자에 올라가는 것도
싫어요
그건 진짜 어깨동무가 아니죠
그냥 지금은 허리동무 할래요
엉덩이 동무는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 조은주-
어른들은 잘 먹는 나를 보며
자꾸 키가 몇이냐, 몸무게가 몇이냐 물어요
키랑 몸무게는 자꾸 재라고 하면서
아무도 내 맘키, 맘무게는 관심 없어요
내가 열 살이면
마음의 키도
마음의 무게도
평균인지 안 궁금한가 봐요
인터넷에 누가 열 살 평균 맘키, 맘무게 좀
올려줬으면 좋겠어요
- 조은주-
샤워하다가
손에 있던 거품들이
욕실 벽에 붙었다
갑자기 따귀 맞은 욕실 벽도 황당하고
내동댕이쳐진 샤워거품들도 당황했다
손으로 잡으려고 다가갔더니
또르르. 또르르. 또르르.
하나씩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잠시 그대로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