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로 키우는 가족

22일 차

by 착한별


시작은 아이를 키우는 일이었다.

3,2kg의 작은 생명체가 나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매일 봐도 신기한 '작은 사람'과 눈을 마주 보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달처럼 웃는 모습 나도 따라 웃으며, 나는 '한 살의 나'부터 다시 키우고 있었다. 동안 나는 충분히 듣지 못했던 예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아이에게 매일 해주고 또 해주는 동안 울고 있던 '내 안의 아이'도 웃기 시작했다.

호기심 많은 아이, 할 말이 많은 아이,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며, 그런 어린 시절을 내지 못했던 나도 조금씩 행복해졌다. 이제라도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위안이 되었다. 내가 받고 싶었던 걸 아이에게 해주면서 위로받았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제대로, 제때에 표현하는 법을 가르쳤다.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도 틈나는 대로 반복해서 얘기해 주었다. 지금도 매일 아침 등교하는 아이에게 "엄마아빠가 없을 때 ㅇㅇ이는 ㅇㅇ이가 지켜야 해.'라고 말한다.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을 꼭 가르치고 싶었다. 아이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나도 점점 그런 사람으로 바뀌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영어 말하기 대회 준비 중인 아이와 한바탕 했다. 재능을 믿고 대충 하는 눈에 보여서 한소리 했다. 사실, 암기력과 임기응변 능력은 나에게도 있다. 내게 그런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나도 대충 한 적이 많다. 아이에게 뭘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최선을 다해서, 꾸준히, 끝까지, 하라고 말하면서 사실 뜨끔했다. 그건 나도 아직도 안 하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드웨어는 아빠지만 소프트웨어는 엄마인 아이를 보면서 나는 , 아이에게서 내 모습을 자주 본다. 그래서 이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다시 키우는 기분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는, 나를 다시 키우라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물 같다. 이 아이가 내게 온 순간부터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사랑 듬뿍 주며 다시 키웠다. 그리고 지금도 그 둘을 함께 키우고 있다. 내가 키우는 것 같지만 아이가 나를 키우기도 한다. 에게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해 준 아이는 "엄마 아들로 와 줘서 고마워"라는 말이 절로 나오도록 나를 행복하게 하는 시간이 많다. 내가 살면서 누군가를 이토록, 아니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니, 없었다. 그런데 이 아이를 사랑하는 일이 곧 나를 사랑하는 일이었다.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아이는 나를 키우러 이 세상에 온 게 분명하다.




아이를 키우려다 나를 키우며 내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 평온해지니 '남의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어머니 아들인 남편 말이다. 결혼 초에는 '남의 편'이니 '남편'이지 하고 미울 때도 많았다. 남편은... 시어머니가 40년 가까이 키우다가 내게 인수인계한 거고 생각했다. 남편은 그냥, 나중에 며느리에게 미안하지 않게 나는 내 아들이나 잘 키워야지, 다짐하게 하는 레퍼런스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남편을 보는데 '짠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는 내 아들의 미래로 보여서 랬다. 나는 그래도 육아한다고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남편은 20대부터 줄곧이다. 이제 그만하고 싶을 텐데, 쉬고도 싶고 다른 일도 하고 싶을 텐데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가족을 위해 일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미안하고 고마웠다. 미안한 마음이 들 때면 "우리가 더 많이 먹을게요'"라며 아들과 둘이 남편에게 장난쳤지만 실은 나날이 기운 없어 보이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60까지만 일해. 그다음은 내가 책임질게.'라고 말하고 싶지만, 직 내가 뭘 해서 돈을 벌지 잘 모르겠어서 마음속으로만 여러 번 말했다. 집에 있으면서 논 게 아닌데도 늘 마음 편치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남편도 나를 키워주었다. 딸 같이 나를 보살펴주고 키워주었더라. 결혼 전에 갑상선 수술할 때는 보호자로 밤에 있어주었고 결혼식 때는 37살의 신부가 누구보다 빛나길 바라며 유명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입게 해 주었고 결혼해서도 내가 뭘 갖고 싶다거나 하고 싶다고 할 때는 늘 들어주었다. 남편은 내게, 부모에게 덜 받은 사랑을 채워준 사람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충족하기 전에 남편의 사랑으로도 회복되고 있었구나 깨달았다. 지금도 내가 뭘 하고 싶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는 남편은 참 고마운 사람이다. 투머치 F였던 나를 완전 T이고 J인 남편이 바꾸어놓은 부분도 있다. 너무 감성/감정적이던 나도 남편의 영향으로 조금은 합리적/이성적(?)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도 남편을 키웠을까? 장남이지만 누나와 남동생 사이에서 관심과 애정이 부족했던 그래서 조금은 까칠했던 남자도 나를 만나서 어느 정도 충족이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아들에게 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대리 만족기도 했다. 남편 역시 나와 살면서 좋은 방향으로 바뀐 부분들도 있다. 그렇다면 나도 어느 정도는 남편의 결핍을 채워주고 사랑으로 키워준 거다.




아들도 마찬가지로 아빠를 키우고 있다. 아이는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좋은 사람'이 되도록 만든다. 자신과 닮은 아이를 보는 남편의 눈에서는 늘 꿀이 뚝뚝 떨어진다. 모성애 못지않은 부성애가 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취미가 같은 아빠와 아들은 나란히 앉아서 건담도 만들고 해리포터의 성도 만들고 기차도 만든다. 형과 동생처럼 티격태격하면서도 함께 하는 시간을 즐거워한다.



아들은 나를 '푹신 엄마'라 부른다. 나는 남편을 '곰남편'이라고 부른다. 남편은 나를 '와이푸우'라고 부른다. 남편과 나는 아이를 '우주최강먹돌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서로 '곰 세 마리 가족'이라고 얘기한다. 곰 세 마리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키웠고 키우고 있다. 우리 가족의 인연으로 만나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21화서평을 5년쯤 쓰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