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차
남편의 샤워시간은 나보다 길다. 씻는 것도 오래 걸리지만 얼굴에도 몸에도 화장품과 바디로션을 꼼꼼하게 바르고 나오느냐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처음엔 신기했다. 여자인 나도 휘리릭- 샤워하고 대충 바르고 나오는데 엄청 예민한 피부인가 보다 싶었다. 나와 남편이 다른 것은 그저 꼼꼼한 성격이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로션 하나 바르는 모습에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가 심하게 건조해서도 있지만 구석구석 정성껏 자신의 몸에 로션을 바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자신을 더 아끼는 사람이 맞다.
나는, 내 몸은 대충 바르지만 아이는 꼼꼼히 발라주는 사람이었다. 왜 자신에게는 로션을 꼼꼼히 바르지 않았을까? 얼마 전부터 귀찮아도 나를 아끼는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정성껏 로션을 바르고 있다. 아이 크림도 바르고 가끔씩 팩도 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고 그저 시간을 좀 더 들이는 일인데 그동안 나를 너무 대충 대했다.
언젠가 엄마가 혼자 먹어도 제대로 차려놓고 밥 먹으라고 말한 게 생각났다. 사실 나는 귀찮아서, 설거지거리 만들기 싫어서 그냥 그릇 하나에 담아먹은 적이 많았다. 그랬던 내가 이제, '스스로를 그렇게 대하는데 누가 나를 귀하게 대접할까'하고 알아차렸다.
사랑 듬뿍 받은 아이는 다른 사람 눈에도 그게 보여서 어딜 가든 사랑받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내 아이는 사랑받은 티 나는 아이로 키우려고 노력했다.
그렇다면 나는 사랑받은 티가 나지 않아서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났던 걸까? 티 나도록 사랑받지 않았어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보이는,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었다면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을까? 나는 외모든 다른 무엇이든 늘 자신이 없었다. 자신감도, 자존감도 부족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 못 받고 자란 것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요즘 나는 달라졌다. 나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연습 중이다. 소중한 내 아이 대하듯이 나를 대하고 있다.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나 불편한 사람은 멀리 하고,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면 굳이 하지 않는다. 내 삶에서 좋은 것들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몸에 좋은 것들을 챙겨 먹고 즐겁고 행복한 일들을 찾아서 하루를 채운다. 내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되도록 제 때 한다.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나에게서 나오는 에너지가 되고 그 에너지는 사람과 상황으로부터 나를 지켜준다는 것을 요즘 자주 느낀다. 나를 사랑하는 내가 되어서 다행이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너그럽고 다정한 내가 되어 사람들에게 그 에너지를 나누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