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너에게 있어
나는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입 밖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잘하지 못했던 아이는 혼자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일어난 일들을 곱씹기도 했지만 내가 보고 들은 걸 토대로 일어나지 않은 것까지 상상하기도 했다. 조용히 혼자 생각하는 일로 시간을 많이 보냈다. 누군가의 눈에는 몽상가로 보였을 수도 있다. 현실이 즐겁지 않았던 어린이는 자신의 생각 속에서 놀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나는 왜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것은 최근 5-6년이다. 사람들은 내가 원래부터 책을 좋아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린 시절에 책이 집에 많지 않았고 2030 시절에도 책을 사긴 했지만 그렇게 열심히 읽지는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국어, 문학책에서 봤던 책의 일부 글이 내가 아는 전부일 때가 많다. 남들 다 읽어봤다는 책들 중에 내가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많다. 가끔씩 남편은 책을 안 좋아하는 자기도 읽은 그 책을 정말로 읽은 적이 없냐고 놀라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책 바람’ 나는 시기가 다르다더니 나는 그 시기가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인가 보다.
나와 닮은 아이는 생각이 많다. 우리는 서로 각자의 생각을 읽어내기도 한다. 엉뚱한 면도 닮아서 쿵짝이 잘 맞는다. 연필을 머리에 대고 있으면 생각이 연필로 들어가서 글로 쓸 수 있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서 한참을 웃었다. 아이의 머릿속에도 생각꽃이 피고 있었다.
어릴 적에 막연하게 작가의 꿈을 가졌다. 작가가 뭔지, 어떻게 해야 될 수 있는 건지도 몰랐지만 그냥 나의 생각을 끄적이는 게 좋아서 그리고 그걸 한 글자씩 써서 눈에 보이게 하는 게 좋아서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육아를 하면서 아이에게 어린이책들을 많이 읽어주었고 미니북 만드는 법도 알려주었다. 이제 아이의 꿈 중의 하나도 작가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들으며 자기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탈 거라며 자신 있게 말하는 아이를 보며 내심 부러웠다.
최숙희 작가의 그림책 <너는 어떤 씨앗이니?>에 보면 '000 하던 씨앗이 000이 되었네'라는 구절이 반복된다. 그걸 읽다가 내 버전으로 바꾸어보았다. 목까지 차오르는 말을 내뱉지 못했던 사람, 안으로 삼킨 게 많아서 목소리에 힘이 없던 사람, 그 사람은 이제 자기 소리를 내는 소리꽃이 되려고 한다.
나는 일상 속에서 그리고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생각이 떠올라서 생각꽃을 피우는 사람이다. 그런 나의 생각들을 이제 차곡차곡 글로 써보고 싶다. 이수지 작가가 한 ‘이야기는 너에게 있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렇다. 이야기는 나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