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나의 세상 속 금성에게
"아버지,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혼술을 하고 있던 30살 삼순이는 끝나버린 사랑이 너무나 아팠음을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독백하는 장면이 있었다. 2005년 여름은 나의 대학시절을 가장 빛나게 보냈던 시절이었고, MBC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은 여름만큼이나 뜨거웠다.
나도 누군가를 좋아했었지,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지..
매주 화요일 6교시는 점심시간 없이 1교시부터 6교시를 온통 수업으로 채우는 그런 요일이었다. 그 당시 남자친구는 화요일만 되면 뚱뚱한 바나나 우유 하나를 들고 내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그 우유를 전해주었다. 그 우유를 마시면서 스쿨버스 승강장으로 함께 내려갔던 기억이 오늘 더 진하게 여운이 남는다. 나에게 그는 금성처럼 반짝이는 사람이었고, 덕분에 난 예뻐졌다는 칭찬을 자주 듣고는 했다. 그리고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도 함께..
그런데 이 연애라는 것이 항상 예쁘고, 행복하기만 하면 참 좋을 텐데, 꼭 마지막 이별에는 세상 다 끝난 것처럼 큰 아픔을 주기 마련이다. 생각해 보면, 그 아픔은 세상 처음 겪어보는 공허함일지도 모른다. 항상 내 옆에 있어 줄 것만 같고, 이 감정을 영원히 누리고 있을 것만 같았는데 이별로 인해 나의 세상은 텅 빈 공간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 순간을 처음 경험하는 첫사랑은 남자든 여자든 그래서 더 잊히기 어려운 거 같다.
'두 번 다시는 남자 안 만날 거야!' 유난히 힘들었던 그 시간을 보내고 나면, 또 어느새 다른 사람을 만날 용기가 생기고, 그 공허함은 또 다른 사람으로 치유가 되고, 상처가 덮이게 된다. 또 그 아픔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받고 싶어 하고, 사랑하고 싶어 한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니, 온 세상이 내 거 같아.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 보여!"
금성이라는 행성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별이다. 금성을 영어권 나라에서는 '비너스'로 부르고 있는데 사랑과 미를 대표하는 여신의 이름이기도 한 비너스, 금성은 우리 인간사에 여러 가지 형태로 연애와 결혼에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세상을 달라 보이게 만드는 힘, 그건 바로 사랑이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분명 누군가를 위해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노력이지만, 결코 힘들거나 슬퍼할 겨를이 없다. 오히려 당당하고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견디기 힘든 다이어트부터 엄마 잔소리에도 하지 않았던 영어공부까지.. 때로는 그 사람에게 맞추기 위해서 시크한 나를 상냥한 사람으로 만들어 내는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하긴.. 세상이 달라 보이는데..
금성은 지구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하늘을 운행하고 있다. 태양 빛도 적절히 받아서 따뜻하고, 태양의 보호를 받는 행성 중 하나이다 보니 항상 온화하고, 적절한 균형감으로 갈등이나 싸움은 절대 금물이다. 우리는 연애하는 동안에는 서로에게 따뜻한 존재이고, 또한 다투지 않으려고 평소에는 생기지 않던 이해심과 배려심이 마구마구 솟아나기까지 한다. 하지만 금성은 새벽녘이나 초저녁에 강렬하게 빛을 반짝거리고 사라진다. 감정에도 유효기간이 존재하듯이 금성이 나의 하늘을 지배하다가 어느샌가 나의 하늘을 벗어나 그 빛이 점점 사그라져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하늘의 이치이기도하다.
' 그 좋았던 감정, 어디로 사라진 거지'
나의 금성은 그렇게 빛이 나고 있었고, 나는 그와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보이지 않게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어딜 가나 친구들의 영어 리포트를 점검해 주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그런 남자친구가 나보다 능력 있어 보여 멋져 보였다. 그리고 마음 한편엔 부러움도 한가득이었다. 키도 크고, 매너도 좋아서 아무 사이도 아닌 여사친들과 함께인 그를 보고서, 아닌 척하면서 뒤돌아 질투도 많이 했다. 그런 그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이 사랑을, 이 감정을 혹시 잃어버릴까 봐 나는 그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그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아서 새벽에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잘 먹어서 좋다고는 했지만 살찔까 봐 집에서는 밥을 굶어가며 버틴 날도 많았다. 그가 잘하지 못하는 것, 어려워하는 것 해결해 주는 그런 든든한 여자친구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금성의 빛이 점점 내 하늘을 벗어나면서, 그를 향했던 감정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내가 왜 나 아닌 내 남자친구를 위해서 이렇게 힘들게 하고 있지?'
'왜 내가 밥을 굶어가면서까지 힘든 다이어트를 해야만 하냐고!'
어느 날, 내가 그동안 힘든 줄도 모르고 했던 노력들 그리고 그 감정이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변해 그를 공격하는 무기로 변해 있었다.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남자친구가 조금이라도 서운하게 한다면, 곧바로 토라지거나 화를 내기도 하였다. 여자 동기들의 따가운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던 내가 이제는 '너 때문에 내가 학교 생활이 힘들어졌어!' '네가 날 힘들게 해'라는 말로 나의 열등감을 그의 탓으로 전가하고 있었다. 예전과 다른 변해가는 내 모습을 나도 그도 알아차리고 있었고, 학교에서 그를 마주할 자신이 없던 나는 휴학을, 그는 예정보다 빠른 군입대로 그렇게 뜨거웠던 2005년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내 인생에 또 다른 금성이 찾아와 나는 지금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면서 엄마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 당시 그 사람에게 미안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분명 나는 그와 맞추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이 있었고, 그래서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는 나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동력이 되어준 사람이었다. 그때 내가 했던 노력으로 그 위에 다른 것들을 쌓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되었고, 삼순이 나이 30살이 되었을 무렵 나는 더 이상 자격지심에 빠지지 않아도 좋을 만큼 좋은 어른이 되었다.
금성은 사람을 사랑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유지하도록 나를 성장시키는 역할도 한다. 나의 하늘에 금성이 자리 잡게 된다면, 금성은 나를 연애하게 만들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더 멋진 사람으로 바꿔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최적의 인생 터닝 포인트가 되어 주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금성의 빛이 점점 사그라져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더라도 그리 힘들어할 필요가 없다. 금성은 나의 하늘을 또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