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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 May 06. 2021

착하지 않은 외지인

저는 그저 변태하는 중입니다만



녀석의 몸은 찰스보다 조금 큰 걸로 봐서 5개월은 넘어 보였고 잘 먹지 못했는지 비쩍 말라 있었다. 비도 맞고 돌아다니는 듯 짧은 털인데도 군데군데 털이 뭉쳐 있었다. 녀석의 걸음걸이에서 삶의 고단이 묻어나기에 나는 도시락으로 싸온 김밥을 던져 주었다. 떠돌이 개 제임스와의 첫 만남이었다.


동네를 떠도는 이 녀석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나는 꾀죄죄한 녀석의 꼴에 마음이 동하여 가끔 밥을 챙겨 주었다. 처음엔 나를 경계하던 녀석도 내 호의가 마음에 들었는지 남은 밥이나 사료를 얻어먹으려 우리 집을 자주 기웃거렸다. 아주 가까이 오지는 않고 멀리서 꼬리를 흔들며 밥을 내놓으라고 짖어 댔다.


그 후로도 몇 개월 동안 제임스는 찰스의 저녁밥 때가 되면 우리 집으로 출근을 했다. 찰스와 밥을 나눠 먹고 토돌 토돌 걸어 돌아갔다가 다음날 아침에 어디선가 이상한 물건들을 물어왔다. 이웃집 어른들의 사소한 생활용품과 쓰레기 더미에서 찾은 듯한 뼈다귀 같은 것들. 딴에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자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장소에 소중한 것들을 가져다 놓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제임스의 그런 행동으로 꽤나 불편을 겪었다. 일일이 주인을 찾아 동네를 헤매야 했을 뿐 아니라 장갑이나 장화 같은 것이 사라지면 이웃 분들이 우리 집으로 자주 드나드셨기 때문이다.



"너 불쌍해서 밥 좀 챙겨줬더니, 은혜를 이리 갚는 거냐."



내가 부지깽이를 들고 바닥을 팡팡 내려치며 훈계를 해도 녀석은 해맑기만 하다. 나만 속이 터지지. 제임스가 물건을 물고 오는 횟수와 양은 점점 늘어났다. 녀석의 루팡은 이제 늦은 저녁에도 이어져 옆집 아주머니는 잠옷 차림으로 잃어버린 신발을 찾으러 우리 집 뒤뜰에 오셔야 했다. 아무 잘못도 없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을 비치었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니 마을에 소문이 난 듯했다. 어느 날 일면식이 없는 이웃 분이 대뜸 마당에 들어서시더니 나보고 강아지 줄 좀 매라고 한소리 하시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태도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웃으면서 차분히 말씀드렸다.



"아유, 어머니 저도 녀석 때문에 요즘 아주 곤란한 처지예요. 불쌍해서 밥 좀 챙겨줬더니 자꾸 저희 집으로 물건을 물어오네요. 제 강아지가 아니라서 저희 집에 묶을 수가 없구. 저는 이미 강아지가 있어서 거두기도 어렵고요. 이거 참 다들 난감하게 되셔서 큰일이네요."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같은 대사를 꽤 여러 번 한 것 같다. 어떤 날은 이장님이, 어떤 날은 옆집 할머니가, 또 다른 날은 하루에 연속으로 세 분 이상 찾아온 적도 있었다. 이쯤 되니 나는 슬슬 억울하고 화가 치미는 것이다. 내 개가 아니라는데, 다들 왜 우리 집에 오셔서 나에게 책임을 물으시는 거지? 그냥 그대들 골칫거리를 내가 떠안았으면 하시는 건가.



"아니. 제 개가 아니라는데, 다들 왜 이렇게 찾아오셔서 한 말씀씩 하시는지 너무 속상하네요. 자꾸 저한테 와서 이러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하루는 이장님 아내 분께서 오셔서 또 '그 개' 이야기를 하시기에 쌓였던 부아를 드러냈다. 평소 할 말은 꼭 하고 마는 내 성격에 벌써 난리굿을 치고도 남았을 텐데, 외지인으로 시골에 들어와 사는 처지에 밉보일 필요는 없겠다 싶어 많이 참고 참았던 것이다. 문장은 그리 모나보이지 않았지만 눌러 읽는 본새에서 나의 곱지 않은 성격이 뚝뚝 묻어났다.


그 날 이후로 우리 집에 와서 제임스 이야기를 하시는 분은 없었다. 제임스도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우리 집에 서서히 발길을 끊었다. (나중에 옆집 할머니에게 듣기로는 다른 동네 분이 데려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마루에 앉아 며칠 사이 조용해진 마당을 바라보다 보니 아, 이런 게 혹시 텃세라는 걸까? 생각을 한다. 귀농·귀촌을 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던 바로 그 텃세? 강한 유대로 엮여있는 농촌에서 외지인은 꼭 한 번쯤 통과의례처럼 앓는다는 그것. 내가 들은 말들과는 무관하다고 믿고 싶었으나, 달리 또 그것 말고는 마침 어울리는 말이 없긴 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 본 나는 촌사람들의 생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타고난 인사성과 지극히 훈련된 싹싹함이 어른들을 사로잡는 내 주 무기인데, 밉보일 이유가 없었을 거란 생각이었다. 외지인에 대한 관심과 경계를, 이러한 미성숙한 관계 형성의 작용을 통해서 느껴야 한다는 것이 좀 씁쓸했다.


시골살이를 쉽게 생각하거나 환대를 바란 적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애초에 모두 서로의 이방인이었으니 어딘가에 먼저 터를 잡았다고 해서 세를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생각하며 나는 그냥 제임스 사건을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



내게 관계 맺기란 언제나 가능한 한 미루고 싶은 숙제 같다. 그럼에도 마주치는 모든 동네 주민에게 인사한다. 나를 묻는 사람에겐 이름 세 글자를 또박또박 소개하면서 상냥해 보이려 애쓰지도 않고 그저 딱 '나다운 만큼'만 한다. 억지로 끌어 가는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얄팍하고 매정한 것인지 이미 충분히 알고 있기에 이곳에서만큼은 짓고 싶지 않은 표정을 애써 짓지는 않기로 한다. 그 누구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려, 그 누구를 좋은 사람으로 이해하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내게 가장 솔직한 모습을 하고 사람들을 마주한다. 그게 내가 나를 지키며 이방인으로 살아남는 법칙이라 정리하였다.



나는 착하지 않은 외지인이다. 그 사실이 꼭 마음에 든다. 나는 그저 이곳에 고치를 짓고 조용히 나를 돌보며 변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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