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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 May 08. 2021

공간은 주인을 담,닮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시골집



어린 시절 나는 보따리 놀이를 좋아했다. 담요 같은 데에 인형이나 책 같은 걸 싸가지고 방을 돌아다니며 빨래 건조대 아래 집을 장만하는 놀이. 엄마는 그런 날 보면서 "어디 야반도주하는 여편네 마냥"이라는 표현을 썼더랬다. 지금 생각하니, 나의 보따리 놀이는 앞선 미래였나 보다. 스무살 이후 엄마 품을 떠나면서 나는 정말 도망 다니는 사람처럼 짐을 싸 다니며 여기저기 얹혀살았다. 연극에 빠져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원비를 대고 있던 시절이어서 보증금을 모은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사랑보다는 가난에 끌려다녀야 하는 청춘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집 없이 떠돌기를 4-5년쯤, 서울에서 갖은 아니, 빌린 나의 첫 집은 (사정사정해서 겨우 깎은) 보증금 500에 월세 50만 원, 관리비 5만 원의 5평 원룸이었다. 당시 다니던 직장과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하려다 보니 목동 한복판에 집을 얻게 된 것이었다. 크기에 비해 너무 과분한 세를 받는 집이었다. 건물 외관은 번듯했고 복도마다 설치된 CCTV가 마음의 안정을 찾는데 한몫했지만 방 안은 결로가 심했고, 요리나 샤워를 하고 나선 환기를 위해 현관문을 조금씩 열어둬야 했다.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도 아까운 집. 그래도 나는 청춘이 다 그런 거지 뭐, 라며 말도 안 되는 자기 위로를 했다. 지금 보니 청춘이 들으면 참 억울할 말이다.


그 집을 겪으며 나는 집이라는 공간의 최소한의 필수요건이 무엇인지 알아가기 시작했다. 필수요건은 간단했다. 해가 잘 들 것, 환기가 가능할 것, 빨래를 건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것. 이 단순한 조건을 맞추기는 예상대로 상당히 어려워서 친한 친구와 돈을 모아 베란다와 두 개의 방이 있는 집으로 두 번의 이사를 했다. 한 번은 내가 큰방을, 한 번은 친구가 큰방을 썼다. 우리가 고른 집들은 지은 지 오래됐거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5층이었지만 목동의 그 방보다야 훨씬 훌륭한 집들이었다. 전형적으로 여름에 덥고 겨울엔 추웠고 바퀴벌레를 박멸하기 위해 안 써 본 제품이 없지만 나는 어렵게 얻은 나만의 온실에 뭐라도 하나 심어 가꾸려 부단히 애를 썼다.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 직접 여기저기 손 보기도 하고, 조명을 바꾸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싱크대 문을 떼고 천을 달아보기도 했다. 잦은 이사에 변변한 가구 하나 없었지만 식물을 기르고 사진 같은 것도 벽에 붙여가며 퍽퍽한 도심 속에서 삶에 애정을 더할 공간을 만들려 노력했다.

집은 그런 곳이어야 했다. 지친 하루를 끌고 들어와 씻기고 먹이고 내일은 좀 더 쉬울 거라 달래 가며 마침내 다음날 새로운 하루를 또 살아내게 하는 공간.





이제 나에게는 베란다가 아닌 마당이 딸린 집이 있다. 물론 내 집은 아니다. 그런데 비로소 '나의 집'을 찾은 것이다. 외부에서 보면 여전히 쓰러져 가는 폐가겠지만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이 확연히 다르게 나는 손을 써 두었다. 폐가를 수리하고 꾸미며 내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이 공간을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우는 것이었다. 물론 가장 저렴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물건과 재료를 선택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지만, 이만하면 성공적으로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공간에서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마도 나 자신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이전보다야 나도 소품으로써는 썩 마음에 들어가고 있다. (특히 침대에 널브러진 모습이 완벽한 인테리어의 정점인 듯하다.)


처음에는 부엌 벽에 타일을 붙이거나 핸디코트를 바르면서 작은 균열이나 어긋난 수평에 굉장히 집착을 했더랬다. 작은 구멍도 시멘트를 개워 일일이 메꾸고, 벽에 난 못 자국도 작게 자른 종이조각을 덧대가며 가린 후에야 도배를 했다. 원래도 신경병이 심하지만, 귀찮다고 대충 해놓으면 지내는 내내 눈에 거슬릴 것 같았기 때문에 애초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된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때 놓친 그런 작은 흠들은 지금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골살이에 마음이 너그러워진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젠 그런 것들은 삶에서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보이지도 않을 작은 못 자국에 마음을 쓸 것이 아니라 공간에 채워질 나의 어떤 하루, 그 순간을 타고 흐르는 음악의 선곡을 보다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도배나 장판, 타일 깔기 같은 기본 작업 후에는 나무를 사서 필요한 물건을 만들었다. 처음 해보는 톱질은 서툰 자세를 만들어내 누군가 봤다면 배를 잡고 웃었겠지만, 내가 직접 도안을 그리고 만든 아일랜드 식탁은 내 어정쩡한 자세와는 달리 꽤나 근사하다! 물론 저렴한 두께의 나무를 선택한 탓에 칼질을 할 때마다 흔들거리지만, 내 허리 높이에 딱 맞게 설계를 해서 칼질을 하면 최적의 각도로 재료를 썰어낼 수 있다. 이건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내가 타고난 목수일 지도 모른다는 짧은 착각에 빠질만했다.


레일 조명을 전동드릴도 없이 우직하게 드라이버 만으로 설치하고는 손바닥이 마찰로 타 들어가는 것 같은데도 직접 고른 전구를 달며 만족스러움에 아픔을 싹 잊었다. 멀리 밤바다를 유영하는 오징어배의 전구 같다는 생각을 하며 <여수 밤바다>를 흥얼거린다. 내 부엌이 고요한 밤바다의 범고래가 된 만족스러운 순간.





그렇게 공간은 조금씩 주인을 닮아 갔다. 흰색 사이에 보라, 노랑을 끼워 넣은 책의 정렬이, 꽃봉오리가 잘 보이게 화분을 놓은 각도가 나를 이야기한다. 마음에 드는 원단을 잘라 만든 커튼이 내가 좋아하는 색을 뿜어낸다. 최근 TV 프로그램에서 악동뮤지션 찬혁이 자신의 집에 놓인 가구와 소품에 "얘도 찬혁, 얘도 찬혁"이라며 온통 자신을 덧댄 것을 보았는데, 출연자들은 그를 놀려댔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공감했다!


내 공간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나의 투영이다. 더군다나 이 집은 뼈대를 제외한 많은 부분이 내 손을 탔으니 가히 '찰나의 공간'이라 이름 붙일만하다. 나는 온통 나로 이루어진 이 곳에서 글을 쓰고, 맥주를 마시고, 텃밭을 가꿔간다. 그렇게 나를 담은, 닮은 시골집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유형해지도록 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채워 놓고 언제나 나의 작은 세상을 여기 펼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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