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믿으세요?

퇴고 없이 단번에 쓰는 글

by 찰란

맞춤법을 믿어요

외계인 없음을 믿어요

좀비가 걷지 않고 뛰기를 믿어요

젓가락이 숟가락보다 강함을 믿어요

평행우주 없음을 믿어요

텃밭 없는 옥상을 믿어요


볶음밥을 만들면서까지 남은 국물을 먹는 것

밑바닥을 보이면 마른 물수건에 손을 닦는 것


멋진 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일기에 써 두었다

베란다에 내 둔 책장이 땅밑으로 가라앉는 줄도 모르고

벽돌 책을 조금 더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옆자리의 두 남자는 말없이 음료를 마셨다

뚱뚱한 남자는 등산을 가자고 했다

마른 남자는 그러자고 했다

뚱뚱한 남자는 서울 둘레길을 걷자고 했다

마른 남자는 그러자고 했다

뚱뚱한 남자는 산 정상에서 오뎅을 먹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마른 남자는 그러냐고 했다

뚱뚱한 남자는 아버지를 좋아한다고 했다

마른 남자는 그러자고 했다


뚱뚱한 남자는 슬픔이 없음을 믿는다

마른 남자는 축구 경기의 승패를 확인한다

무게 없는 영혼이 종아리를 긁는다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소란스럽게 깜빡이는 전광판 너머로

해가 없어지고 있다

낮이 없음을 믿는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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