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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Sep 12. 2024

피라냐

퇴고 없이 단번에 쓰는 글

매일 닦는데도 작아지지 않는 이를 매만진다


오늘 할 일은 오늘 마쳐야 하는데 장마가

예고도 없이 끝나버렸다


서랍 속에 처박아둔 머리끈이 오늘 아침에

피라냐가 되어 있었다

마련해 둔 바다가 없어 급한 대로

입속에 넣고 다니기로 했다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식욕이 왕성하다던데

어떻게 자랐길래 입도 뻐끔 안 하니

기억이란 게 있니

이제 다시 잠에 들 시간


입을 열 때마다 물이 흘러나와

입천장을 핥으면 짭조름한 소금기가 느껴지고

우리는 눈 대신 혀로 서로의 안부를 살피고

축축하다는 건 건강하다는 거야

할머니가 틀니를 뺐다 끼우기를 반복한다

아이의 엄마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듯


피라냐는 점점 길게 자라 입술을 뚫고 나왔다

이건 혀가 아니라 피라냐예요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도망을 고민하는 사이에 그물망은 바닷물에 녹아 없어졌다 예고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서랍은 닫히지 않고

너는 열린 문을 참지 못한다 구멍만 보면 달려드는 못된 양아치


발밑으로 강이 지나간다

식도를 꿰뚫는 다리를 놓고 싶다


네가 말을 거는 바람에 다 망쳤어

다정한 사람이 될 뻔했는데

툭 튀어나온 뻐드렁니를 보며 놀려도 좋다고 졸졸 쫓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숄 사이로 보이는 겨드랑이에 박힌 왕점

입을 맞출 수도 있었는데


말할 준비가 필요하다 보통 십 분에서 십오 분 길게는 한 달에서 삼 년 반


지난 금요일에는 상한 홍시를 오늘 점심에는 양배추 즙을

덥석 받아먹는 입속에 다섯 손가락을 모두 집어넣고 싶은 충동을 참는다


오늘만 지나면

뗏목 위

낮잠을 자는 나

누군가 우연히 발견해 잠을 깨울지도 몰라

그 사람은 분명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일 거야


못했던 인사는 돌아오는 목요일에

아무도 강을 건너지 않는 틈을 타


엎드려 우는 너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한다

돌아와서 기뻐

새액새액 목에서 바람이 들어왔다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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