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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Jan 09. 2024

등근육을 찾았다

퇴고 없이 쓰는 글

도대체 어떻게 한 거죠 분명 나한테 없었단 말이에요

어깨를 으쓱하고 몇 번 돌렸을 뿐인데 승모근을 움직이지 말래서 가만히 그 자리에 두었을 뿐인데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단 말이에요 설마요 그럴 리 없어요 누구에게나 있는 거라니요 사람이라면 없을 수가 없다는 말씀은 조금 지나친 것 같아요

팔 굽혀 펴기도 해 보고 아령도 들어보고 철봉에도 매달려보고 무거운 이삿짐 상자를 들어본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단 말이에요 어떻게 하신 거예요 나 정말 믿을 수가 없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등 한가운데 가느다란 줄기가 돋아난 느낌 느낄 생각조차 못해서 부럽지조차 않았던 느낌 다른 세상에서 벌어지고 갈라지는 근육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지금 바로 내 눈앞에서, 아니 눈 바로 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잖아요


쌤 마술사 출신이라더니 역시 경력직은 달라도 뭔가 다르시네요 쌤은 없던 것도 뿅 하고 만들 수 있어서 좋으시겠어요 비둘기는 최대 몇 마리까지 만들어 보셨어요

있던 걸 없애는 게 더 어렵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비둘기는 모자 속에 다시 넣어버리면 그만이잖아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없는 말을 지어내지 마세요 나의 등근육은 내일만 돼도 사라질 것 같은데


쌤 있잖아요 이건 다른 쌤한테는 말 안 한 건데 진짜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야 돼요 네 약속해요

상자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보셨죠

빨리 말해줘요 나도 시간이 없단 말이에요 비둘기를 찾는 척하지 말아요 모자 속에는 아무것도 없잖아요

뭉친 근육도 없으면서 아까 우리 같이 어깨를 앞뒤로 움직이면서 다 풀었으면서 왜 자꾸 팔은 빙빙 돌리는 거예요 할 말이 없으면 만들어봐요 나의 등근육처럼


원래 없던 것처럼 있어주면 돼요 가만히 그 자리에 쉿

혹시 알아요 언젠가 나의 등을 뚫고 나오는 날이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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