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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Jan 08. 2024

확정하시겠어요?

퇴고 없이 쓰는 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들이 오고 싶은지 아닌지.

당장 나갈지 안 나갈지도 모르는 마당에.

하룻밤을 꼬박 새우며 앞으로도 계속 마당을 찾아올 것이라 말해놓고도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게 사람인 걸요. 공들여 가꾼 텃밭의 향기만 맡고 떠나는 사람. 성수동 편집샵에서 낚시꾼들은 기다려요. 가능한 눈을 마주치지 않아야 물고기가 다가오는 법. 입에 바늘을 걸고 싶은 만큼 무시할 거예요.


열 명을 모아 오라뇨. 제가 무슨 수로요.

목소리만 크게 냈다가 목이 쉬면 어떡해요. 여덟아홉 명이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면 나는 혼잣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걸요. 언제든 취소할 수 있게 내 목소리를 환불할 수 있게 그렇게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저의 목을 아껴요. 앞으로도 종종 사람을 부를 거거든요. 혼잣말은 안 하지만 어쨌든 말은 계속할 거거든요.

십만 원을 열 명이서 내면 만원이지만 아홉 명이 마당을 떠나면 남은 한 명이 울어요. 우는 아이에게 돈을 어떻게 받아요. 이제 나는 선물도 못 받는데 울기라도 할래요.


온다고 했다가 가는 사람도 있어요. 가끔. 아니 꽤 자주.

문을 열고 마당에서 신을 슬리퍼까지 준비해요. 슬리퍼는 대부분 짝을 찾아가지만 어떤 슬리퍼는 다른 한 손으로 하이파이브를 하는 사람처럼 멋쩍어져요. 내가 나의 손을 때리는 일은 적을수록 좋댔어요. 박수도 함부로 치지 않아요. 떠나고 싶어 지니까. 왠지 일어나서 막을 내리며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한 번만,

한 번만 나에게 속아줘요.

철저하게 굴지 말고 바보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물고기처럼 낚여주세요. 아프지 않아요 아픈 건 언제나 바늘을 빼는 사람.

백 명이 와도 한 명이 와도 열 명인 것처럼 생각해 주세요. 눈을 문질러 조금은 뿌옇게 세상을 바라보세요. 허탕을 칠 때면 올림을 해요 한 마리가 열 마리가 되고 열 마리가 백 마리가 되면 마당은 어지럽게 변해요. 난장판이 된 텃밭을 보면 웃음이 나와요.


그냥 그렇게 생각해 보세요. 올 사람은 오고. 갈 사람은 가고. 없는 사람은 이전부터 없는 거고. 있을 사람은 진작에 와 있고. 자꾸 캐물어 본들 소용없어요. 저도 당신처럼 미래를 알지 못해요. 메뚜기 떼가 쏟아져 들어올지 눈사람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지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휘슬을 불기 전까지 물고기의 수는 계속 변하는데.


그러니 제가 말씀드리잖아요.

어떻게 지금 확정하겠어요.

저를 그냥 믿어주세요. 저는 저를 한 번 믿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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