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란 Jan 16. 2024

조지아, 조지아

퇴고 없이 쓰는 글

겁먹지 말자. 그래봤자 상대는 화면 너머에 있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가만히 나를 노려보는 것 그리고 하던 말을 잠시 멈추는 것 밖에 더 있겠어?

나는 필사적으로 웃으며 할 말을 골랐다.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것은 보기보다 힘들다. 수면 아래에서 백조의 발은 거짓말을 한다. 힘도 안 드는데 힘이 드는 척 열심히 발버둥 치면 다들 믿어준다. 가끔 눈물도 흘린다.

5초 이상 정적이 흐르면 나한테 불리하다. 마지노선을 지키지 못하면 찾아오는 것은 패망뿐이다. 그래서 질문이 뭐였지?

저의 올해 계획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맡은 바 업무를 성실하고도 빈틈없이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어서 몇 마디를 더하고 나니 화면 너머의 턱을 괸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날개를 접은 독수리처럼 상대는 경계를 푼 모양이다.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가니?

동유럽이 좋아 보이더라고요. 예를 들면 조지아?

비자 없이도 1년을 지낼 수 있다는 정보가 꽤나 인상 깊었다. 무작정 떨어진 사람들을 아무 말 없이 품어주는 요람의 나라라니. 물론 그것 말고는 조지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조지아 너무 좋지 않니.

커피인지 와인인지 하여튼 무언가의 원산지로 되게 유명한 나라라고 했다. 얼마 전에 조지아를 다녀온 누가 말해줬는데 뭐가 하여튼 유명한댔어. 동명의 커피음료가 떠올라 커피가 아닐까 싶은데 찾아볼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여튼 간에 뭘로 유명하기야 하겠지.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날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있었고 독수리에게는 훌쩍 다녀올 수 있는 거리지만 나에게는 앞으로도 떠나고 싶은 나라로 유명할 것이다. 평생 갈 일이 없으니 조지아는 없는 말을 지어내기 좋은 곳이고 백조의 수면 아래에 있는 나라였다. 조지아를 가고 싶어요. 언젠가 조지아로 날아가고 말 거예요.

부디 다음 여행 때는 조지아로 떠나기를 바라. 다녀오면 너는 더 성장해 있을 거야.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 더 마지막 힘을 짜내 필사적으로 웃었다. 없는 말은 웃음 없이 나오지 않는 법이다. 조지아에 있는 나는 없는데. 그런 나의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데.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거리에 놓인 새의 다리를 보았다.

날개와 가느다란 다리만이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몸통도 머리도 없었지만 분명히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

한 명은 뚫어져라 그것을 보더니 고개를 돌렸고, 한 명은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소리를 질렀고, 한 명은 피식 웃었다.

날아가다 부딪힌 것인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조지아에는 새가 많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몸통도 머리도 없지만 능청스럽게 새라고 부르면 새가 되니까.

나는 이제 조지아에 가고 싶은 사람으로 살아간다. 날개 없이 날아날 조지아가 행복하리라 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을 굴리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