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란 Jan 15. 2024

공을 굴리는 사람

퇴고 없이 쓰는 글

구석에서 혼자 그렇게 공을 굴리면 재미있니?

너의 공만 보라색이잖아 우리한테는 유치한 핑크만 줘 놓고

공을 한 손에 쥐고 팔을 쭉 뻗어 돌리라고 하는데 어깨에서 뚜둑 소리가 나는데 이게 맞는 거야? 나 제대로 돌리고 있는 거야? 누워 있는 다른 사람들한테서도 뚜둑 소리가 들리는데 다들 모른 체하는 거냐고?

나는 돌리던 팔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어

지금 뭐 하는 거지 싶어서 공을 바닥에 툭 던졌는데 너는 쳐다볼 생각도 않지? 거울 속 네 모습이 아직도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지?

난 몰라 내가 그만두고 싶은 건 다 너 때문이야

공을 내려놓고 싶은 것도 거울에다 냅다 던져버리고 싶은 것도 고무로 된 공의 표면을 잘근잘근 씹어버리고 싶은 것도 아무튼 다 너 때문인 줄 알아 그렇게 일러바칠 거야

나를 일름보라도 불러도 상관없어 어차피 슬픈 건 너일걸? 잊었다 생각하다가도 내가 공을 굴리는 모습이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를걸? 유치하다고? 유치해 봤자 네가 준 핑크만 하겠니

공을 굴리는 일이 끝나면 나는 말도 없이 떠날 거야

어깨도 아프지 않고 허리만 아픈 게 슬퍼서 그러는 거 아니거든?

미안한데 나를 그만 좀 쳐다볼래? 할 말 있으면 거울로 보지 말고 직접 마주 보든가

네 옆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도 마시지 않을 거야 네가 주는 물티슈도 받지 않을 거야 내 공은 네가 닦아

공이 터지는 것도 모르고 잘근잘근 씹힌 자국도 모르고 어쩜 그럴 수 있어? 공한테 집중 좀 해 좀

집에 가면 공부터 살 거야 네 것보다 멋진 빨간색으로

나도 이제 공을 가진 사람이야 공까지 가졌으니 뭐가 더 부럽겠어?

나도 내 방에 누워서 거울을 보면서 공을 굴려야지 어깨는 아프지 않게 팔을 크게 돌리고 구석에서

근데 나한테 거울이 있었던가?

매거진의 이전글 연결된 적 없는 아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