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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Jan 22. 2024

축제가 필요해

퇴고 없이 쓰는 글

신종플루에 걸려 학교를 일주일 넘게 가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머리도 감지 않은 채 방구석에서만 뒹굴거리며 컴퓨터를 껐다 켜기를 반복한 일주일은 한 달처럼 느껴졌다.

아주 긴 하루를 한 달 동안 반복하는 느낌.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으니 오늘과 내일도 다르지 않을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준비된 자들에게 찾아오는 것은 방학이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내가 없는 학교는 분명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을 터였다.

쉬는 시간마다 한 곳에 모여 시답잖은 논쟁을 벌이던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내 이름으로 장난을 치던 국어 선생님도,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던 새로 오신 국사 선생님도 나의 부재와 투병을 슬퍼하리라.

그것보다도 청소 당번은 어떡하지? 분명 저번주가 내 앞의 앞 번호 녀석이었는데. 그렇다면 오늘 내가 물걸레질을 했어야 할 화장실은 아무도 치우지 않은 채로 시커멓고 더럽게 남아 있는 건가?

버려진 화장실보다도 겁이 나는 건 화장실을 비우고 집으로 도망친 죄로 혼이 나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 멋대로 아프지 않고 함부로 도망치지 않을게요.


학교에 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건 학교에 가지 않은지 나흘을 지날 때였다.

동생을 따라 주말에 병원을 갔을 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검사를 받아보고 싶었다.

목구멍에 막대기를 찔러 넣는 일은 어렵지 않았고 마침 막대기가 옆에 있으니 한 번 찔러주세요, 하는 마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학교를 빠져 보겠다고 온도계를 뜨거운 물에 넣고 70도까지 올리던 아이들처럼 교활하지도 않았고 마른기침을 하며 나름의 연기를 펼치던 아이들처럼 계산적이지도 않았다.

그냥 막대기를 꽂았고 나는 신종플루에 걸린 사람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주에 경복궁을 다녀왔던 것이 원인이었다.

대규모 행사가 있어 내국인이고 외국인이고 여하간 거리에는 사람들로 즐비했다.

수업 과제를 위해 사진을 찍으러 갔던 것인데 그때를 빼고는 도저히 걸릴만한 틈이 없었다.

바깥을 웬만해서는 잘 돌아다니지 않는 성향인데 마침 그 웬만하지 않은 상황에 제대로 걸린 것이다.


며칠 후 학교 축제가 열렸다.

좁은 강당에 앉아 있는데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온몸으로 노폐물을 분출하는 느낌이었다. 목구멍에서는 땀이 났고 땀구멍에서는 침이 나올 지경이었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추웠다. 조금 있으니 이번에는 땀으로 등이 흠뻑 젖을 만큼 더웠다. 선생님 에어컨 좀 꺼 주세요. 아니 다시 켜 주세요. 이것은 축제인가요? 저한테는 장례식 같은데요.


끔찍한 축제를 겪고 나니 다음날 씻은 듯이 통증이 나았다.

씻김굿이라도 해 준 것인가 싶었다.

그렇게 축제가 끝나고 아무렇지 않게 학교를 다니다 주말을 맞이했고, 병원에 들러 가볍고도 아무렇지 않은 마음으로 검사를 받은 것이다.

아픔은 떠났지만 바이러스의 흔적만이 남아 양성 판정을 받았고, 나는 건강한 몸으로 타미플루를 하루 세 번 챙겨 먹으며 집안을 뒹굴거리고 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바이러스는 내 옆에 앉은 다른 아이들에게 옮겨 갔었다.

내 마스크를 가져가 후, 하, 후, 하, 거리며 익살스럽게 숨을 쉬던 양아치 녀석도 보기 좋게 걸렸다.

무대 위에서 나에게 씻김굿을 해 준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나 혼자서 옆에 있던 다른 모든 아이들에게 살을 날린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등교를 했고, 이전보다 교실은 더 휑했다.

양아치 녀석을 포함한 몇몇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옆에 앉아 축제를 봤다는 것이다.

나는 내심 두근거리며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화장실의 동태를 살폈다.

하지만 냉장고에 넣은 채 시간을 멈춰 놓은 듯 학교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겨울이 가까워졌는지 조금 더 차가워진 것 말고는.


너 없다고 아무 일 없었어.

나도 알아 새꺄.

하여간 시큰둥한 녀석. 말 한마디 지기 싫다고 저렇게까지 말할 게 있나.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정말 알고 답한 건 아니었다. 그때까지도 정말 바뀐 게 없었는지 교실과 복도와 화장실 구석구석을 눈으로 살피고 있었으니까.

뭘 하면서 지냈는지 말해주고 싶었는데 말할 게 없었다.

분명 하루가 일주일 같았는데 일주일을 요약하니 하루도 채 안 되는 것 같았다.


국어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부르며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고 국사 선생님은 계약이 끝나 학교에서 떠났다고 했다.

또다시 내게 이런 휴식이 찾아온다면 정말 알차게 보내야지.

어차피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면 내가 나를 기억해야지.

하지만 그 이후로도 몇 번의 방학이 흘러가는 동안에도 나는 내 방구석에서 컴퓨터를 껐다 켰고 바뀐 것이 있다면 머리를 매일 감게 되었는데 그것만으로는 일주일이 일주일 같아지지는 않았다.

역시 그때 살을 날리는 게 아니라 굿을 받았어야 했다.

다음 축제는 언제인가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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