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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Jan 27. 2024

뼈와 살

퇴고 없이 쓰는 글

눈이 있는 너의 얼굴은 상상이 가지 않아.

뻥 뚫린 세 개의 구멍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 근데 하나도 안 무서운 걸?

내가 기억하는 너의 얼굴에는 늘 세 개의 구멍이 있었고 나는 그 안을 오랫동안 들여다봐 왔어.

날카로운 이빨을 훤히 드러내고 있지만 실은 웃음을 참고 있는 거지, 그렇지?

너와 내가 함께 살았었다면 내가 너의 등 위에 자주 업혔을 거야. 뾰족한 등뼈도 부드러운 살결에 가려져 포근했을 거야.

사나운 척하지 마. 나는 다 알고 있어. 너도 결국 머리를 쓰다듬으면 내 품으로 파고들 거잖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너를 좋아했어. 따뜻함도 없는 네가, 태어난 곳도 모른 채 마지막으로 잠든 곳만 겨우 기억하는 네가 나를 끌어당겼지.

다른 사람들은 너의 진짜 모습을 궁금해 하지만 나는 달라.

네가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든 배가 불룩 나온 게으름뱅이든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든 상관없어. 너의 뼈는 변하지 않으니까.

모든 걸 다 벗겨내도 너의 얼굴에 뚫린 구멍 세 개는 변하지 않잖아. 나는 그거면 돼.

차가워도 상관없어. 나는 차가움을 즐겨. 때로는 나의 열기도 식혀줄 수 있잖아.

나도 언젠가 나의 살을 벗고 너의 등 위에 가만히 누울 날을 기다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눈을 뜨면 우리는 같은 곳에서 함께 발견될 거야. 같은 시간을 살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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