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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Feb 01. 2024

고라니의 울음

퇴고 없이 쓰는 글

악양으로 떠난 고라니를 보고도 Y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도망을 가려면 진작 갔어야지. 오히려 고라니의 뒷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며 Y는 술잔을 꽉 쥐었다.

고라니의 울음을 들어본 적이 있다. 문자 그대로 그것은 우는 소리였다.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답답함에 터져 나오는 울분 같은 것이 섞여 있어 끈적함이 느껴졌다. 고라니의 울음을 바로 옆에서 들었을 때 발걸음이 달라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일 것이다.


건강한 돼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풀을 먹으라고 했지.

Y는 모른다. 악양으로 도망친 고라니는 점심에는 풀을 뜯고 저녁에는 고기를 삼켰다는 것을.

고라니는 오랫동안 고라니임을 숨기고 살았고 그러니 일탈이라는 명목으로 풀을 뜯으며 웃었지만 사실 고라니는 달리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옆을 둘러봐도 돼지들 밖에 없었으니까. 매일 같이 일탈을 반복하다 고라니는 마침내 울타리를 넘었고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돼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침저녁으로 고기를 먹었고 말을 했고 울고 싶으면 울었다.


고라니가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에게 물어봤자 할 수 있는 것은 먹지도 못하는 고기를 뒤적이고 마시지도 않는 잔을 빙빙 돌리는 것뿐이다.

그러니 고라니에 대해서도 악양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고라니가 되기 위해서 고라니를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돼지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실은 Y도 알고 있다. 고라니의 끈적한 울음을. 악양 너머의 풍경을. 당신도 고라니였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고기를 먹지만 울타리 너머를 바라보던 때가 있었는데.

악양에는 도망간 고라니가 모여 살고 그곳에는 풀이 머리 위까지 자란다. 돼지는 머리 위를 함부로 올려다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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