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믿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펭귄의 표정이 너를 닮았을 뿐이야
어깨에 올린 손을 치워줄래 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미안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미안하다고 말하는 법이야
척하는 사람이 싫어 알은척 모르는 척 불쌍한 척 괜찮은 척
자신에게 솔직한 게 그리도 어렵니
옷장 속의 저 남자처럼 졸리면 잠들고 추우면 겨울 옷을 꺼내 입고
눈밭을 하루종일 굴러다닌 일을 왜 나한테 설명하니 나는 눈으로 오리를 만들든 쥐새끼를 만들든 관심이 없는 사람이야
미끄러질까 봐 발만 보고 걷는 사람들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
펭귄이 쓰러져 있어도 밟지 않고 빙 돌아가는 것이 건강에 좋다
눈밭에서는 건강한 펭귄만이 살아남는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늙어버렸다는 뜻이라고 옷장 속의 펭귄이 말해준 적이 있다
먹고 싶은 것만 먹고살 수 없으니 믿고 싶은 거라도 믿고 살래 내가 너의 슬픔을 손톱마냥 조금 뜯어먹는대도 살이 찌는 것도 아니잖아
옆구리가 시릴 때는 너를 믿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걷고 또 걸어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어 그건 당연한 일이니까
추운 펭귄들끼리 한 곳으로 모이게 되어 있어 그건 누구라도 목격하게 되는 일
늙어버렸다는 것은 너무 많은 옷을 입었다는 뜻 덥지도 춥지도 않은 척하며 옷을 한 벌도 벗지 않았다는 뜻
여름옷을 입은 남자는 마른 체형에 잔근육이 몸 이곳저곳에 붙어 있다
너를 잘 알지 못하니 나는 끝까지 모른다고 말한다
아는 것도 없고 앓는 일도 없지만 조금씩 찬바람이 부는 것을 깨닫고 옆구리의 추위를 느낀다
미처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나는 펭귄의 표정을 찾아 눈밭을 헤매다가 마침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