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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Feb 05. 2024

오해로운 밤

퇴고 없이 한 번에 쓰는 글

스위치를 누르라고 했지 불을 끄라는 뜻은 아니었어

우리가 함께 지낸 게 하루이틀 일이니 너 때문에 자꾸 어두워지잖아

내가 불을 끄면 좋겠다고 말했던 건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야 말을 넘겨짚지 마

H의 말을 잘못 이해한 건 너야 H는 마지막까지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어 원래 칼을 든 사람이 제일 겁이 많은 법이라는 건 그 사람의 말버릇이었잖아

H와 함께 떠난 강릉의 민박에서 우리는 밤새 성대모사를 했어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부터 일본의 정치인까지

목소리만 갈아 끼워도 멀리 갈 수 있었어 그 사실이 마음에 들어서

불은 밤새 켜져 있었어


아무튼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너보다 오래 산 사람의 말이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해 

의심도 없이 살면 피곤해

H가 스키장에서 한 말을 벌써 잊은 거니

비탈길이 없다면 다리를 오므려야 돼

그 사람의 마지막을 우리는 같이 보았잖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주먹으로 땅바닥을 내리쳤던 기억이 머릿속에 있지 않니


자꾸 어두워지지 마 끝난 건 끝난 거고 돌아갈 방법은 없어

핸드폰 화면을 그렇게 껐다 켠다고 내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니

목소리를 흉내 내는 일은 이제 내 마음에 들지 않아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데도


다리를 오므리는 게 좋다고 했지 마음을 짜내라는 뜻은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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