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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Feb 06. 2024

나약해 빠져서는

퇴고 없이 한 번에 쓰는 글

비겁한 사람들이나 섬에 가는 거야.

도망은 치고 싶은데 정말 외딴곳으로 가기는 싫지? 내 말이 틀렸어?

꼰대라고 욕해도 어쩔 없어. 너네들이 아직 세상을 모르는 변하지 않으니까. 이삼 년만 지나 봐. 방명록에 남긴 글의 문장만 봐도 엄청 부끄러워질걸?

주위를 둘러봐. 이렇게 광활한 갈대밭과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고개만 푹 숙이고 있지 말고.

뭐가 그렇게도 우울하고 슬픈지 모르겠어 나는. 운다고 누가 등이나 토닥여주던? 손을 잡는다고 눈물이 쏙 들어가던?

근데 여기는 서비스가 없네. 아는 사람은 술 한 병만 시켜도 안주가 두세 개씩 나왔다던데.

이왕 올 거면 손거울은 꼭 챙겨. 셀카봉이니 삼각대니 거추장스러운 물건들 말고. 여긴 이상하게 거울이 없네. 몇 주 전에 세운 코가 무너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은데 답답하네 거 참.

나라고 힘든 일이 없었느냐고? 왜 없었겠어. 그렇지만 나는 다 훌훌 털고 일어난 사람이야. 헤드셋을 끼고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하는 너네들이랑은 다르게.

들어봐. 힘들 때는 러닝을 해야 돼.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뛴 줄 알기나 하니? 말해도 못 믿을걸. 아니면 뭐든 좋으니 땀 흘리며 몸을 쓰는 일을 좀 해. 마음 대신 지방을 불태우는 거지. 끝나고 나면 샤워도 개운하게 하고. 그럼 아무 문제없어 세상에.

어, 건들지 마. 아직 연약해서 금방 무너진다고. 이거 한답시고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 왔는데.

여기 사장님은 진짜 장인인가 보네. 하루종일 요리만 해 아주 그냥. 내가 조금만 나쁘게 마음먹었으면 무전취식도 했겠다.

그래서 내 말의 결론은 그거야. 어깨 좀 펴고들 살라는 거. 다른 사람들이랑 말도 좀 섞고, 짜샤. 용기는 딱 그 순간만 내면 되는 거야. 나머지는 그 후에 어떻게든 돼. 사람이 좀 대범하고 그래야지.

이제 슬슬 가고 싶은데 사장님이 주방에서 나올 생각을 않네. 나도 바쁜 사람인데. 그냥 갈라 그랬는데 착한 내가 참는다 참아. 좀만 더 시켜야겠어. 너도 아직 더 먹을 수 있지? 사람이 말을 하는데 대답 좀 해라. 오늘은 내가 다 산다고 했잖아.

아직도 티 나는 거 같아? 어때? 내 코 너무 이상한가? 만졌을 때는 괜찮은데 실제로는 어떻게 보여? 거울 좀 가져올걸. 아무 말이나 좀 해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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