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란 Feb 09. 2024

스몰토크

퇴고 없이 한 번에 쓰는 글

천안에는 신부동과 불당동과 쌍용동이 있다.

신부동은 터미널과 아라리오 갤러리가 있고 불당동은 놀기 좋은 핫한 곳이고 쌍용동은 새로 지어진 계획도시 같은 곳이다. 이것이 내가 천안에 대해 말할 있는 대부분의 사실이다. 천안에 살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물어보면 2년 가까운 시간을 그곳에서 꼼짝없이 보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검색만 해도 나오는 정보이지만 천안에 대해 몇 마디 말을 하면 사람들은 짐짓 놀라워한다. 천안 사람들에게 천안은 유명하지 않은 명반 같은 것이어서 누군가 그 수록곡 중 몇 개의 이름만 대도 반가워하는 것이다. 아, 학화호두과자와 뚜쥬르 단팥빵의 맛을 아시는구나!

하지만 몇 마디를 나누면 더 이상 천안에 대해 할 얘기가 없어진다. 과정은 항상 동일하다. 동네의 이름과 맛집 몇 군데를 말하면 상대방은 놀라워하고 감탄사만 반복하다 끝난다. 누구도 천안에 대해 깊이 말하지 않고 풍선을 가지고 놀듯 몇 번 통통 공중으로 튀기다 흥미가 떨어지면 땅바닥에 떨어지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나에게 천안은 어떤 곳이었나. 2년 가까운 시간을 그곳에서 꼼짝없이 보냈음에도 정작 기억에 남는 것은 표면적인 정보뿐이다. 신부동은 터미널을 타는 곳이니 왔다 갔다 하며 보았다 치더라도, 불당동과 쌍용동은 가본 적도 없다. 천안에 사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었던 정보를 그대로 전하는 것에 불과하다.

신부동과 불당동과 쌍용동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 나는 사람의 이목구비를 설명하듯,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아무런 가치가 담겨 있지 않은 투명한 이야기만 해야 했다. 옆자리에 앉은 그의 얼굴을 나의 두 눈으로 들여다본 적이 사실은 한 번도 없으니 말이다.


가끔 내가 정말 천안에 살았던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말이 좋아 천안이지 사실상 산꼭대기에서만 지냈었기에 그곳이 천안이 아닌 후지산이라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산을 내려올 때는 주변을 둘러보거나 다른 동네에 놀러 갈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고 그저 서울에 있는 본가를 향해 직진만 했었다. 천안과 친하게 지낼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내 옆자리에서 줄곧 지우개를 빌려주겠다며 쭈뼛거리고 있었는데도, 먼저 말을 건넬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너에게 조금만 더 빨리 마음을 열었더라면 우리는 정말 친해질 수 있었을 텐데.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기 일주일 전에 처음으로 반말로 대화를 나눈 친구에게 건넸던 말이 떠올랐다. 내 옆자리의 사람들은 늘 자리에서 일어날 때가 되어서야 애틋한 마음이 들고는 했다.

미용실을 나올 때까지 천안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불당동이 여전히 핫한 동네이고 쌍용동은 늘 새로운 도시인 것처럼. 미용사는 정말요, 진짜요, 를 반복하며 놀라워했고, 감탄이 끝나자 아무것도 놀랍지 않은 표정으로 결제를 진행했다. 뒷머리에 펌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것을 깨달은 건 집으로 돌아온 이후였다.


거울 속의 모습이 낯설어 내가 나를 멀리한다.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문득 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치켜뜨는 버릇에 주름이 지는 것은 알고 있었고 고치려고 노력도 했지만, 이제 보니 주름의 깊이가 더 깊어졌고 개수도 늘어난 것을 발견했다.

자연스레 눈썹으로 눈길이 간다. 작년 초쯤 눈썹을 다듬고 그 이후로는 손을 대지 않았었는데 그새 솜털이 자라 좌우가 다른 것이 확연히 티가 났다. 한쪽은 급경사가 진 것처럼 뚝 떨어지는 형태인데 다른 한쪽은 넓은 고원처럼 평평하다. 사람들이 나의 왼쪽과 오른쪽 얼굴을 어떻게 바라보았을지를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이마에 세로로 길게 난 흉터는 내 생각과 달리 거의 보이지 않았다. 피가 철철 흐르는 와중에도 새벽에 응급실에 가서 흉터가 남는 게 두렵다고 말했던 일이 무색할 만큼 눈을 (이마에 주름이 지지 않게) 크게 뜨고 봐야 겨우 보이는 수준이었다. 내 머릿속의 내 모습과 실제 내 모습은 일치하지 않았다. 천안에 살았지만 천안을 모르는 것처럼 내 몸으로 살았지만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했다.


천안에 사는 사람은 연휴가 되어 천안으로 떠나고 서울에 사는 나는 어제처럼 여기에 머무른다. 

뒷머리가 신경 쓰여 괜히 만지작거리다 거울을 비추어 본다. 연휴가 지나면 미용사를 다시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천안에 다녀오고 나면, 천안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면 우리는 천안에 대해 조금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환원주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