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없이 한 번에 쓰는 글
애매한 오후에 방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얼마나 위험한지
어릴 적 데었던 오른쪽 새끼손가락은 아직도 자라나지 않고 있어
오늘 같은 날 네가 없었으면 불이 났을 거야
우리 집은 커튼만 있고 창문은 없거든
들어올 생각 없던 자만이 우연히 들어올 수 있는 곳 통나무로 된 언덕 위의 오두막집처럼
너는 기적을 믿니 너 자신보다
나는 틀린 말은 하지 않아 언제나 그럴듯한 정답만을 말하지 인공지능보다 더 인공적이야 내 어린 시절은 네가 다시 만들어 주었거든
나는 혼자 커튼 뒤에 숨어 있던 어린아이 눈을 가리면 아무도 이곳에 없다고 생각하던 아이
네가 내 방에 들어와 있는 게 줄곧 신경이 쓰였고 비둘기에게 그러는 것처럼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천적처럼 으르렁거리고 싶었지만
빈자리에 햇빛이 들어섰겠지 너는 줄곧 햇빛을 신경 썼으니까 그 위에 가만히 앉아서 개미처럼 입을 오므렸다 열었다 하고 있었으니까
몸이 타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혹시 아는데 모르는 척하는 거니 커튼 뒤에 숨어 있는 내가 놀랄까 정말 그런 짓은
하지 말아 줘 나는 기적을 믿지 않아 나는 나 자신도 의심하는 어른인걸
우연히 우리 집에 도착했다면 이제 더는 머무르지 않아도 돼 창문은 처음부터 없었어
이게 내가 말할 수 있는 정답
애매한 오후가 끝나기 전에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어
눈을 가린 나를 보더라도 모르는 척 날아가버려
오후가 지나면 햇빛은 확실하게 사라지고 이도저도 아닌 시간이 끝나 분명하게 지금부터 밤이 되고
기적도 증발하고 우연은 없이 방 안에는 나와 커튼만이 남고
손가락에는 너의 손가락이 닿았던 느낌만이 어렴풋이 느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