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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Feb 11. 2024

퍼즐은 가장자리부터?

퇴고 없이 한 번에 쓰는 글

이 남자에게 다리를 찾아주고 싶어.

연인은 손에 든 퍼즐 조각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 안에도 남자의 다리는 없었던 모양이다. 흩뿌려진 조각들을 하나씩 집어 들어 꼼꼼히 살펴보느라 연인의 퍼즐판은 휑하게 비어 있었다. 반면 내 퍼즐판의 빈 공간은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메워지고 있었다.


퍼즐은 가장자리부터 맞추는 게 좋아.

저녁 식사를 건 치열한 내기라는 게 무색하게 형세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했다. 긴장감을 주기 위해 연인에게 귀띔을 했다. 퍼즐을 많이 맞추어 보지는 않았지만 그게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두 사람이 함께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은걸.

그 말을 듣고 내 퍼즐판을 보니 완성본 속 붉은 벽돌로 만든 창고와 노란 단풍나무와 연못을 헤엄치는 청둥오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불그스름하거나 누런 사각형만이 뻥 뚫린 하얀 공간을 꽉 틀어막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퍼즐 내기는 무승부로 끝이 났다.

정말로 식사를 얻어먹으려고 시작한 승부도 아니었고, 잠시나마 경쟁심에 불타올라 몰입할 수 있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시에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채워 넣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무슨 그림을 맞춘 건지는, 완성된 퍼즐판을 카메라로 찍을 때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연인은 바닥을 뒹굴거리는 고양이를 오래 보았고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하는 남자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띤 여자의 마음을 오래 알았으며 책장 사이로 스며드는 오후의 따스한 햇빛을 오래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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