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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Feb 08. 2024

환원주의

퇴고 없이 한 번에 쓰는 글

낑낑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계단을 오르내린다.

당나귀를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넌 부자(父子)처럼 나는 종종 우스운 사람이 된다.

지하철로 10분이면 가는 거리를 30분에 걸쳐 간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건 덤이다.


자전거를 타면 노래의 울림이 깊어진다. 그들은 안장 위에서 분명 평소와 다른 목소리로 부른다. 그렇지 않고서는 눈에 힘이 풀릴 리 없으니까.

보행자 우선이라고 쓰인 다리 위를 건널 때는 강물 위를 가로지르고 싶은 마음. 한때는 두 발이 멀쩡했던 말이야. 수상스키는 언제나 자전거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바 테이블에 앉아 익숙한 듯 칵테일을 주문하고 책을 꺼내면 나는 당나귀가 된다. 말이 안 되는 삶을 살고 있다며 걷기를 포기한다. 나는 걷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어 너희들을 등에 업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으니 나는 내 두 팔과 두 발로 걷지 않을 테야. 시간이 지나면 나를 짊어진 두 사람의 사이는 가까워진다.

한때 훈남으로 불렸던 사장은 노래의 순서를 조정한다. 잠시 정적이 흘렀지만 사장을 포함한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끊겼던 노래는 다시 흐르고 문은 계속 열리지 않는다.


가게 안에는 나와 훈남(이었던) 사장을 제외하면 한 테이블 밖에 없다. 끊긴 노래의 틈을 채우려 고군분투하던 이들은 이제 다트를 던진다.

사장은 기계를 조작하고 다시 노래의 순서를 조정하러 카운터로 향한다. 얼마나 많은 다트와 얼마나 많은 만점과 얼마나 많은 환호를 목격해 왔을지 상상하면 그의 얼마나 말없음이 이해가 된다.

우리는 서로의 말없음을 섞지 않고 다트가 과녁으로 날아가는 소리를 듣는다.


오래전 서로의 시를 나눠 읽던 모임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수요일 오후만 되면 책상을 드르륵거리며 둥그렇게 둘러앉기만 하면 우리는 모두 자전거에 탄 것처럼 다른 목소리를 냈다.

세상에서 내가 몇 번째로 예쁜 것 같아?

네가 나를 미워할 때까지 너를 미워할 거야.

엄마는 비행기에서 태어난 나를 보고 성급한 년이라고 비웃었어요.


안장 위에 앉은 사람들은 말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평소에는 좀처럼 나올 생각이 없는 말들 뿐이라 마당에 쪼그려 앉아 있기 마련이었다.

모임의 캡틴은 말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고 아무리 많은 말들을 동시에 들어도 거뜬한 장사였다.

일주일 내내 그를 만나는 시간을 기다렸고 그와 같이 있지 않을 때 그가 우리의 말을 쓰다듬는 모습을 그렸고 논리적으로 이것은 행복한 나날이라는 것을 느꼈다.

당신이 걷던 길을 계속 걸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마지막 말이 지금 떠오르는 것은 이 훈남은 그가 아니고 사장은 장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게를 나서니 바람은 오후보다 더 서늘해졌고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 갈 마음이 들게 하지 않았다.

이제 나에게는 말을 들 힘이 남아있지 않았고 쓰다듬을 힘조차 없어 그냥 당나귀처럼 누군가의 등에 업히고만 싶었다.

아무래도 자전거는 괜히 탔던 것 같다고 생각하며 오늘은 더 이상 안장 위에 앉을 수 없으니 노래도 평소와 같은 목소리겠구나 생각한다. 아무 감흥도 없이 누군가의 말을 들 힘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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