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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Feb 24. 2024

방주네컷

퇴고 없이 한 번에 쓰는 글

총알이 발사되려면 거리가 필요해 수줍은 만큼 인형은 저만치 떨어져 있어

호흡을 가다듬고 방아쇠를 당기면 큰 소리가 나고 꿈쩍도 하지 않는데

총알을 주우러 달려오는 사람의 목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고 액세서리라고 주장하지만 알파벳 네 자리의 암호를 풀고 싶어져 너의 뒤에는 누가 서 있니 총구를 들이민 채로

현실적으로 생각해

균형 감각을 잃어버리지 마 네 컷 프레임 안에 들려면 서로의 어깨를 붙잡아야 돼 연인이 아니라도 연인인 것처럼

괜찮아 다들 이렇게 하는 거야 원래 어색한 거야 마음도 없는데 화해한 두 사람의 사진이 떠올랐어

우리는 다툼도 없는데 화해를 했다 셔터를 누르면 미래로 돌아가는 건지도 몰라 사람들은 렌즈 앞에서 토끼가 되고 아저씨가 되고 사이보그가 되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멀리 해야 돼 나는 전생을 믿거든 이 방을 나가면 우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거야


식당 앞에는 같은 사람들이 세 시간째 서 있고 너는 빨간 광역 버스 이 층으로 나는 헌혈의 집으로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이니? 사실은 노를 젓는 중이란다

팔이 아플 때까지 젓다 보면 언젠가는 물이 들어오는 법이거든

방에 홀로 들어가

문을 닫고 셔터를 누르면 식당 앞에는 아무도 없을 거야


방 안에 함께 갇혀 있다고 다 같은 처지는 아니야

너는 아직도 네 뒤에 있는 사람을 믿니? 열쇠는 다 거짓말이야 처음부터 잠긴 건 없었어

셔터를 눌러도 사람들은 돼지가 되지 않아 혼자 돼지가 되었다고 억울해하지는 마 결국 모두 인형이 될 테니까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거리는 다시 가까워지지 않아 총알은 점점 더 발사되기를 머뭇거리고

방 안의 공기는 아까보다 조금 더 탁해졌어


아직 발사되지 않은 총알이 하나 있어 마지막이 오지 않도록 아껴둘 거야 쓰러질 일은 없어 내가

건드리지 않는 이상 선반 위의 사람은 가만히 있어

믿고 싶은 대로 해 총알은 너에게 줄게

방문은 열려 있고 잠긴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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