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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Feb 22. 2024

온 힘 다 쓴 글

퇴고 없이 한 번에 쓰는 글

날개뼈를 조이라는 말이 아직도 무슨 뜻인지 조금도 모르겠어 날개도 없는데 날라는 걸까 땀구멍에서

깃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뜻일까 나중에

체육관을 나오고 지하철 역으로 내려갈 때가 되어서야 나는 다리 위에 허리가 있음을 깨닫는다

허리가 말한다 허리가 소리친다 허리가 올라간다


여태껏 뭐 하다 이제야 고개를 드니

굴을 파고 들어갔더니 옥상으로 나온 사람의 혼잣말을 들었어 걸으라고 해서 걸었을 뿐인데

허리가 없는 게 뭐 어때서요 나는 옆에서 케이크 위의 촛불을 불어 꺼뜨려도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 않는 사람

불이 나서 스프링클러가 터져도 서랍 안에 넣어둔 비행기가 물 위를 둥둥 떠다녀도

뛰어다니지 않아요 복도에서는 넘어지기 쉬워요 엘리베이터는 위험하고

계단은 한 방향으로 흘러요

(수영모를 쓴 옆집 사람이 자꾸 이곳을 쳐다보고 있어요)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난간 위의 눈사람이 아래로 뛰어내렸어 발이 없으면 발목으로 해가 없으면 새가 아침을 시작하겠지

쥐어짠 말은 언제나 빗나가 그러니 눈의 초점을 풀고 어깨에 들어간 힘도 풀어 허리가 자꾸 말을 하잖아

무작정 체육관을 나선 사람은 문래동에 도착했어 다방에는 발목이 젖은 사람들로 가득하고 어깨만 계속 만지고 있어 무언가 돋아날 것처럼 손끝을 세워

벅벅 긁다 보면 피가 나고 바닥에 고이다 발목까지 허리까지 차오르고 다들 힘이 없는 모습으로 한 곳으로 줄을 서서 걸어가

계단으로 내려가면 먼저 도착한 사람이 앞에 있고 어깨에 손을 올린다

여태껏 뭐 하다 이제야 여럿이 되었어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은 사람이 아무것도 몸에 걸치지 않고

계단을 거슬러 올라온다 옥상에는 옥상이 없는데 나는 난간에 걸터앉아 두 팔을 양쪽으로 펼치고

온 힘을 다해 기다린다 허리가 소리친다 허리가 꾸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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